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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제」첫걸음 인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인도네시아」의 최고정책기관인 국민협의회가 12일 밤 지난 21년간 이 나라를 통치해 온 이른바 「건국의 아버지」 「수카르노」 대통령의 하야를 결의하고 이어 군부의 실력자 「수하르토」 장군이 대통령서리에 취임함으로써 인니는 이제 새로운 「역사의 장」에 들어서게 되었다.
한 때 1억 7백만 전국민으로부터 「국부」로서 추앙을 받고 대통령·수상·군최고사령관 등의 어마어마한 직을 한 몸에 지녀 「카리스마」적인 영도력을 자랑하던 「수카르노」의 부패 및 파탄직전에까지 이른 국민경제 때문에 국민으로부터 신망을 잃었지만, 아직도 상당한 지지세력을 배후에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는 「9·30쿠데타」이래 오늘날까지 기회 있을 때마다 「롤·백」을 기도, 때론 상당한 효과를 거두기도 한 것이다.
따라서 상징적인 존재로서의 대통령직에 남아있는 상태에선 「수카르노」가 언제라도 권토중태할 수 있는 위험성이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여러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수하르토」 장군은 「수카르노」와의 정면대결로 야기될지도 모를 혼란을 피해 우회작전을 펴온 것이다.
「수하르토」는 국민협의회 개회식에서 『「수카르노」가 친공「쿠데타」의 음모를 알고있었다』고 폭로하고 「쿠데타」 전후의 「수카르노」의 처신에 대해 맹렬히 비난을 하면서도 『더 이상의 내분과 유혈을 초래할 극단적인 결정을 내리지 말아달라』고 국민협의회에 요구한 것은 이러한 「수하르토」전략의 일부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인니통들은 지난 1년간 인니의 사태는 거의 완전히 「수하르토」가 설정한 시간표와 「코스」를 따라 진행되었다고 보고있으며 「수카르노」를 순전히 명목만의 대통령으로 남겨둔 지난 「2·20조치」는 대통령의 완전한 추방을 노린 「수하르토」전략의 마지막에서 두 번째의 조치로 판단하고 있었다.
지난 12일 밤 국민협의회의 결의에 따라 내년 7월로 예정된 총선때 까지 대통령 권한을 맡게 된 「수하르토」는 취임연설을 통해 『우리는 무정부상태와 권력의 만능주의를 절대로 피해야한다』고 역설하고 내란의 위험성을 암시하면서 『인니의 최대과업은 국민의 단결』이라고 강조했다.
사실 새로운 역사의 장에 들어선 인니의 앞날을 어둡게 하는 것은 한 둘이 아니다. 외국공채 24억「달러」에 매년 24%씩 오르는 물가로 인니의 경제는 현재 파탄직전에 있는 것이다. 새 지도자들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게 될 때 인니는 걷잡을 수 없는 혼란의 도가니로 들어가게 될 것이란 것은 명약관화한 사실이다.
대통령권한을 박탈당하고 내년총선 때까지 정치활동이 금지된 「수카르노」이지만 해·공군과 경찰 그리고 중동부「자바」등에선 아직 거의 절대적인 존재로서 지지를 받고 있는 그가 늘 주장하듯 『국가와 국민을 위해』자중하고 새 지도자들에게 협력할 것인지, 또한 부패·무능한 「수카르노」축출이란 한가지 목표를 위해 뭉쳤던 신체제내의 각종분파들이 앞으로 어떻게 협력해 나갈 것인지는 그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이와 같은 제반문제들이 해결될 때 『어느 누구도 패북당하지 않았으며 어느 누구도 승리하지 않았다. 국민만이 승리했다』는 「수하르토」의 주장이 실현될 것이다. <김한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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