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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불 여기자와 베트콩"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편집자 주=모험을 좋아하는 불란서 여기자 「미셸·레이」는 지난 1월 17일 「베트콩」에 납치되어 주월 미군을 발칵 뒤집히게 하였다. 「파리」의 「패션·모델」이었던 28세의 미모의 「레이」가 「베트콩」과 함께 지낸 3주일의 수기가 「라이프」지에 보도됐는데 다음은 그 묘역이다.
그날 아침 나는 월남학생 2명을 태우고 「봉송」을 향해 1번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베트콩」들이 쳐 놓은 도로 장애물을 촬영하기 위해 몇 「킬로」를 달렸을 때 동승한 학생이 「스톱」하고 소릴 질렀다. 쳐다보니 「파자마」를 입은 3명의「베트콩」이 차에 소총을 겨누고 있지 않는가. 순간 별 생각이 다 떠올랐다.
「프랑스」에 있는 내 어머니와 아들의 얼굴, 하오 2시에 만나게 되어 있는 비행기, 이 지역에는 월맹군 1개 대대가 있다는 정보 등 또한 『아! 「미셜」 넌 「비타민」 알약을 휴대하지 않았지』하는 생각도 떠올랐다.
나는 『「파프·바오·치」(어! 신문기자) 「프랑스」 기자예요』하고 차에서 내렸다.
그들은 손짓 몸짓을 하면서 서로 다투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나는 민간인 복장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내가 미군용 「정글」화를 신고 있음을 깨달았다. 모두들 내 발을 쳐다보는 것 같았다. 지금까지 월남에서 1천6백「마일」을 돌아 다녔지만 이 같은 꼴을 당하지는 않았다.
나는 「델타」 남단에서 DMZ까지 돌아다니며 영화 「시나리오」를 쓰려고 작년 여름 월남에 왔었다. 「베트콩」과 마주친다 해도 나는 전투원도 미국인도 아닌 중립국의 신문기자였기 떄문에 자신이 있었다. 나는 월남 여행의 3분의 2를 이미 마쳤고 한번은 「베트콩」검문소에 걸린 일도 있었지만 체포당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만은 달랐다. 「베트콩」들은 마침내 나와 학생들을 다시 차에 타도록 했다. 그들은 나의 왼팔을 줄로 묶었다. 한 학생이 차를 천천히 몰라고 말해주었다 그러나 발을 마음대로 놀릴 수 없어 차가 막 달렸다. 이 때 나는 미국 기자증이 내 호주머니에 들어있음을 기억해 내고 만일 「베트콩」이 이걸 본다면 내가 「프랑스」 인임을 확인시키기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운전을 하면서 기자증을 꺼내 자리 밑에 쑤셔 넣어 버렸다. 1.5 「킬로」 정도 가자 「베트콩」 들은 차를 멈추게 하고 나무가지로 차에 위장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도와주면 그들이 좋아할 것이 라고 생각하고 나는 그들을 도와 주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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