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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인과 「플레이보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칵테일」잔이 맞부딪치는 소리, 간지러운 웃음소리와 소근거리는 소리가 넓은 방안에서 울려 퍼진다. 기념비처럼 버티고 있는 큰 벽난로, 입구를 지키는 중세기풍의 갑옷차림의 동상들, 요란한 벽화들-그리고 긴 침대 위에 얽히어 있는 선남선녀들. 이것이 도색잡지 「플레이보이」를 발행하는 「휴·마스턴·헤프너」(40)의 저택의 일부다. 그들은 지금 도색영화를 보고있는 중.
「헤프너」가 「플레이보이」지의 창간호를 내놓은 때가 53년. 그러나 그는 벌써 「일리노이」대학의 재학 때부터 「킨제이」의 성 문제에 대한 연구에 감화를 얻고 『위장된 「모럴」』과 『「섹스」문제에 대한 기만』 등의 논문을 통해 그 나름대로 『인간계에 있어서의 「섹스」의 위장된 억제가 막중한 좌절과 비행 및 불행을 초래한다』고 주장, 장차 그가 이러한 주제의 편찬사업을 벌이겠다고 결심한바 있었다.
「헤프너」는 그후 「에스콰이어」지 등에서 익힌 경륜을 바탕으로 드디어 대망의 단독운영을 시도했다. 그의 가구 등을 정리하고 마련한 사업자금 겨우 1만「달러」로 「플레이보이」지의 발간에 착수한 것이다. 「원시적 수준지」라는 비난에 앞서 『「섹스」의 건전한 해방』이란 기치를 들고 「헤프너」가 「메가폰」을 든지 13년만에 창간당시의 7만부가 오늘엔 4백만 부를 돌파하기에 이르렀다.
이제 그는 「시카고」의 몇안되는 대성한 기업인중의 한사람이 된 것이다.
「헤프너」자신이 운영하는 미국내 「플레이보이·클럽」만도 16개. 「자메이카」와「지니버」호반엔 9백만「달러」를 들여「플레이보이」놀이터까지 만들었다. 특히 그는 미국최초로 당시 한창 인기절정에 선 「마릴린·몬로」의 나체「캘린더」를 독점발간, 5만4천 여부라는 엄청난 판매고로 그의 사업기반을 더욱 굳히게 하였던 것-.
또한 동지의 자매지인 「플레이보이」신문의 매상고만도 백만「달러」에 이른다. 『「버니」(토끼)를 「플레이보이」의 상징으로 한 것은 토끼가 동물계의 「플레이보이」이기 때문』이라고 설명.
이후 줄곧 「플레이보이」지는 「인간의 원초적인 애욕」의 묘사라는 과녁을 겨냥해왔고 이는 또 기계문명의 「메커니즘」속에 시든 미국시민의 자극적 청량제가 되기도 했던 것이다.
동지가 다루는 「픽션」물엔 「스타인벡」이나 「서머셋·모옴」이 채 못 다룬 「훌륭한 작품」을 비롯, 많은 인생문제등 어느 지성 지에서도 볼 수 없는 유익한 연재물의 게재를 많은 미 독자들이 입을 모아 칭찬하고있는 판이다. 현재 「플레이보이」지의 독자층 분포를 보면 그 절반이 대학출신의 이른바 지식층이고 70%가 18∼34세에 이르는 청장년 층이며 여성독자만도 25%. <타임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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