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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책/4월의 주제] 세상 속으로 … 넓혀라, 연결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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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중앙일보와 교보문고가 함께하는 ‘이달의 책’ 4월 주제는 ‘세상 속으로…넓혀라, 연결하라’입니다. 우리가 성장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 만나고, 공감하고, 협력하는 것임을 새삼 일깨우는 신간 세 종을 골랐습니다. 겨우내 움츠렸던 몸과 마음을 활짝 펴는 4월, 사람과 자연 속으로 당당하게 나아가자는 뜻입니다.

베르사유 거울의 방에서 열린 가장무도회. 베르사유의 정원과 미궁은 영국 여행자들에게 있기 있는 곳이었다.

◆ 로마로, 그리스로 … 대영제국을 만든 건 여행

그랜드 투어
설혜심 지음
웅진지식하우스
410쪽, 2만3000원

‘투르 드 포르스(tour de force)’는 놀라운 솜씨의 걸작을 이르는 프랑스 말이다. 근대사 속에 숨어 있는 ‘그랜드 투어(grand tour)’에 대해 맘껏 지성적 기량을 뽐내는 책이 나왔다. ‘엘리트 교육의 최종 단계’라는 부제가 달린 이 책이다. 지은이는 연세대 사학과 교수다. ‘영국은 어떻게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이 되었는가’라는 질문에 이 책을 읽은 독자는 답할 수 있겠다. 그랜드 투어를 통해서라는 것이다.

 그랜드 투어를 쉽게 우리말로 표현하자면 ‘평균 2~3년 걸리는 수학여행’이다. 주인공은 지난 수 세기 영국의 상류층 귀족 자제들이다. 옥스퍼드대·케임브리지대를 졸업한 그들에게 그랜드투어는 젠틀맨으로 인정받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성년식, 즉 통과의례였다. 부제가 그대로 보여주듯 ‘엘리트 교육의 최종 단계’였다. 일생 가장 소중한 경험인 그랜드 투어는 평생을 준비하는 밑천이기도 했다.

 영국의 항구 도버나 하리치를 떠나 최종 목적지는 이탈리아였다. 목적은 당시 문화 선진국인 이탈리아로 가서 고대 로마제국의 유산을 살피고, 르네상스가 낳은 이탈리아의 앞선 문물로부터 한 수 배우고 오는 것이었다.

 이탈리아를 겨냥한 영국의 ‘여행 침공’이 시작된 것은 16세기 중반이다. 침공이라고 할만한 대규모 인원이 거쳐갔다. 1785년의 경우 영국인 4만여 명이 이탈리아로 향했던 것으로 추산된다.

『젠틀맨의 가이드』(1770)는 여행시 불필요한 지출을 막는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 웅진지식하우스]

 그랜드 투어라는 용어가 생긴 것은 1660년대다. 극성기는 18~19세기다. 그 기원을 따지면 성지순례 성격이 강했던 그랜드 투어는 차츰 이탈리아의 미술·건축·의학·음악·외교술·사교술을 영국에 이식하는 세속적 수단으로 바뀌었다.

 책의 4~5페이지 ‘그랜드투어 여정 지도’에서 보듯 이탈리아로 가는 양대 루트는 프랑스나 독일을 거치는 것이었다. 프랑스 루트가 직선에 가까웠으나 영국과 프랑스의 사이가 나빴던 1689~1763년 기간에는 독일 루트가 개발됐다. 나폴레옹 전쟁 당시와 같이 이탈리아로 갈 수 없는 상황이면 목적지가 그리스로 바뀌기도 했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그랜드 투어의 역사는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미국을 비롯해 영국식 신사유람은 전 세계로 퍼져나갔으며 참가 계층은 중산층으로 확대됐다. 기차·고속도로·비행기의 등장은 그랜드 투어의 가장자리와 깊이를 넓혔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신기한 사실을 알게 되는 재미가 쏠쏠하다. 예컨대 그랜드 투어는 여행 안내서, 패키지 여행 상품의 기원이기도 하다.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에 영감을 준 것도 그랜드 투어다.

 서구에서도 사학·관광학 등의 분야에서 그랜드 투어에 대한 연구가 본격화 된 것은 1990년대 이후다. 『그랜드투어』는 1차 자료와 기존 연구를 섭렵한 결과다. 16~17세기 영국사 전문가인 설혜심 교수는 『온천의 문화사』 『지도 만드는 사람』 등 내놓는 책마다 최우수 학술상을 휩쓰는 것으로 유명하다.

 설 교수에게 이 책은 전문 학술서 글쓰기에서 벗어나 일반 독자들과 본격적으로 만나기 위한 첫 시도다. 학술 서적처럼 주석이 꼼꼼히 달려 있고 참고문헌 목록도 길다. 410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이다. 그러나 다가서기를 꺼릴 필요는 전혀 없다. 만연체도 아니고 아리송한 전문용어도 없다.

 설 교수는 이 책을 통해 해외 유학의 득과 실을 따져볼 것도 제안한다. 그런 관점으로 읽으면 자칫 우울한 기분이 들 수도 있겠지만 설 교수가 시대를 초월한 인간의 보편성을 발견할 때마다 깔깔거리면서 집필한 책이기도 하다.

 역사·지리 마니아 독자들이 강력히 추천할 만한 책이다. 여행 안내서 용도로도 좋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나온 여행 안내서로도 만족하지 못하는 독자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품격이 있다.

김환영 기자

◆ “네 불완전함을 인정하라” … TED에서 기립박수 받은 까닭

완벽을 강요하는 세상의 틀에 대담하게 맞서기
브레네 브라운 지음
최완규 옮김, 명진출판사
272쪽, 1만5000원

지난해 초 미국 롱비치에서 열린 TED콘퍼런스를 취재할 기회가 있었다. TED는 기술(Technology)·오락(Entertainment)·디자인(Design)의 머릿글자다. 콘퍼런스는 이름 그대로 과학과 예술의 영역을 넘나들며 ‘세상을 바꿀 아이디어’를 나누는 행사다. 국내에는 세계적 석학과 정·재계 거물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천재들의 지식축제’로 알려져 있다.

 한데 현장에서 본 TED의 분위기는 선입견과 좀 달랐다. 청중들은 강연자의 ‘이름’에 연연하지 않았다. 저명 인사의 뻔한 얘기보다 신진 학자의 발랄한 아이디어에 환호했다. 거한 고담준론 대신 상식을 깨는 작은 통찰에 갈채를 보냈다. 맨 마지막 강연자로 나선 이 책의 저자, 브레네 브라운에 대한 반응도 그런 경우 중 하나였다.

 저자는 10여 년간 1000명 이상의 남녀를 상담하며 인간의 취약성(vulnerability)을 연구한 사회복지학자다. 그 결과 사람은 모두 불완전한데, 정작 그 사실을 인정하는 사람은 드물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여자들은 예쁘고 능력 있는데다, 남편·아이에게까지 잘하려 애쓴다. 남자들은 너나 없이 남들 앞에서 강한 척, 겁 없는 척 허세를 떤다. ‘불가능한 완벽함’을 강요하는 세상에 길들여진 탓이다.

 저자는 이 같은 강박이 ‘실패할지 모른다’는 불안감과 수치심을 낳고, 끝내는 주변 사람들과 멀어지게 만든다고 말한다. 때문에 삶을 바꾸자면 “스스로의 취약성을 대담하게 끌어안아야 한다”고 제안한다. 실패와 상처를 겁내지 않아야 세상과 대담하게 맞설 수 있고 그럴 때 비로소 가족간의 소통도 기업의 혁신도 가능하다는 이유다. 한마디로 “취약성은 사랑·소속감·기쁨·창의성의 모태이자 희망·공감·책임감·진정성의 원천”이란 주장이다.

 나흘간 열리는 TED의 참가비는 7500달러(약 830만원)나 된다. 청중 대부분은 자기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이들이다. 그런 이들이 저자의 강연이 끝나자 일제히 기립 박수를 보냈다. ‘차마 말은 못했지만 나도 사실 힘들었다’는 공감의 박수로 읽혔다.

 책에는 강연에 비해 좀더 많은 사례와 이론적 배경이 담겼다. 강연을 보고 나면 책 읽기가 좀더 수월해 진다. TED 홈페이지(TED.com)에서 저자 이름(Brene Brown)을 입력하면 ‘수치심에 귀 기울이기’ ‘취약성의 힘’ 두 강연 영상을 찾을 수 있다. 영어 강연이지만 한국어 자막이 함께 제공된다. 겁먹지 말고 ‘대담하게’ 도전해 보자.

김한별 기자

◆ 중세 길드부터 21세기 구글까지 협력은 우리를 인간답게 만든다

투게더
리처드 세넷 지음
김병화 옮김, 현암사
488쪽, 1만8000원

뉴욕대와 런던정경대 사회학 교수인 리처드 세넷(70)은 자칭 평생 ‘르상티망’(ressentiment)을 연구해온 학자다. 르상티망이란 원한·유감 등을 뜻하는 프랑스 말이다. 보통 사람들을 대변한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그들의 삶에 대해 잘 모르는 엘리트들을 비꼴 때 쓰인다. 불공평한 세상에 대한 약자의 분노 같은 것이다.

 그래서일까. 『불평등 사회의 인간존중』 『뉴캐피털리즘』 『장인』 등 세넷의 전작에는 현대 다양한 사람들의 불안이 세밀하게 담겨 있다. 1970년대 미국 보스턴의 육체노동자부터 2000년대 금융업계 화이트칼라까지 포괄한다. 그의 질문을 간단하게 줄이면 이렇다. ‘우리의 불안은 어디에서 왔을까. 일이란 인간에게 무슨 의미인가. 더 나은 삶은 어떻게 가능한가.’

 『투게더』는 세넷의 이런 고민에 대한 대답이다. 요약하면 ‘잃어버린 협력을 찾아서’ 떠난 여행이다. 중세의 길드에서 근대의 작업장, 현대의 구글까지 사람간의 협력이 어떻게 형성되고 강화됐는지를 탐구했다.

 협력은 어디에나 있는 것이라고? 그러나 세넷의 생각은 다르다. “원칙상 모든 조직은 협력을 좋아한다. 그러나 실제로 현대 조직 구조는 협력을 금지한다”고 말한다. 자본주의의 새로운 형태, 즉 단기적 노동과 파편화된 시스템이 사람들로 하여금 서로 다른 사람들과 협력하고 싶은 욕망과 능력을 약화시켰다는 것이다.

 저자가 2008년 주식시장 붕괴로 일자리를 잃은 화이트칼라 노동자를 만났을 때, 그들은 한때 자신의 상관이었던 이들을 자신들이 거의 존경하지 않았으며, 동료에 대한 신뢰도 피상적 수준이었다고 털어놨다. 이게 오늘날 협력의 참모습이라는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 개인들은 불안감의 노예가 돼 나르시시즘에 빠지거나 타인에 대해 무관심하며 자기만족에 몰두하고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른바 ‘움츠러들기’(withdrawal)다.

 그렇다고 해서 ‘좋았던 옛날’로 돌아가자는 것은 아니다. 『장인』에서 기술(skill)의 힘에 주목했듯이, 그는 이번에도 "차이를 다루는 기술이 더 개선돼야 한다”고 역설한다. 여기서 기술은 사람들 사이의 차이를 이해·조정하고, 또 그 사이의 갈등을 해결하는 것, 그럼으로써 어떤 일을 실행하고 완성하는 것을 말한다. 이 기술은 자연스럽게 협력과 직결된다. 도덕적 의무나 이상으로서의 협력이 아닌,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행위이자 자원으로서의 협력 말이다.

이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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