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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수위 출범 한달] 下. 사회정책 점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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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대통령직 인수위는 지난 한달간 사회 분야의 정책을 무수히 쏟아냈다. 이에 따라 많은 사람들은 "이대로만 된다면 곧 복지 선진국이 될 것"이라며 희망에 부풀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일부에선 "설마 시행되겠느냐"며 의문을 표시했다.

이처럼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이들 정책을 아우르는 정신은 '참여 복지'다. 이는 노무현(盧武鉉)대통령당선자의 공약이기도 하다. 성장보다 분배에 주력하면서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정부가 발벗고 나서겠다는 것이다.

중산층 자녀에게도 보육비를 지원하는 등 복지 대상을 확대하고 정책 대상자들을 의사 결정 과정에 참여토록 하는 방안도 평가할 만하다.

노사정위원회를 격상시키거나 교수회나 학생회를 아예 법제화하는 방안 등이 그 대표적 예다. 이는 국민의 정부가 주창해온 '생산적 복지'와 차별화되는 것이다.

문제는 참여복지가 아직 안개 속에 있다는 점이다. 개념도 모호하고 이를 뒷받침할 정책 수단도 마땅치 않다. 그러다 보니 인수위가 쏟아낸 정책들 가운데 상당수는 풋과일처럼 설익은 것들이다. 타당성이나 실효성을 제대로 검증하지 않은 것을 선심공약 하듯 마구 쏟아냈다는 의미다.

인수위와 행정부 간에 조율 과정에서 마찰음도 끊이지 않았다. "공약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인수위의 질책을 받고 밤샘작업 끝에 盧당선자의 공약에 억지로 눈높이를 맞추려는 모습이 역력했다. 그러니 반드시 검토해야 할 예산은 뒷전이었다.

전문가들은 "5년 전 국민의 정부 인수위에서 의약분업 시행과 건강보험 통합을 좀더 면밀히 검토했더라면 2000년과 같은 파동은 없었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이번 인수위가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야 할 대목이다.

◇돈은 생각했나=장애인 연금제도 도입, 차상위 계층(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소득보다 20% 더 많은 저소득층)에 대한 의료비.교육비 지원, 사회복지 전담공무원 두배로 확대, 경로연금 지급액 인상 및 대상자 확대 등은 수천억~수조원의 돈이 필요한 것들이다. 그러나 재원마련 대책은 빠졌다.

현 정부도 생산적 복지라는 다소 모호한 개념의 복지정책을 도입하면서 예산 지출을 대폭 늘렸다. 1997년 2조7천억원이던 보건복지부 예산이 올해는 8조3천억원으로 세배가 됐다. 인수위의 계획대로 가려면 예산이 20조~30조원 가량 필요할 것으로 추정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처음에는 예산을 따져 실현 가능성이 있는 것들만 챙겼는데 예산을 따지지 말라는 인수위의 주문을 받은 뒤에는 일하기가 훨씬 쉬워졌다"고 말했다. 장밋빛으로 덧칠했다는 얘기다.

◇현실성이 뒷받침되나=인수위는 비정규직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해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내세웠다. 노동부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맞섰다.

인수위의 박태주 전문위원이 "盧당선자의 철학을 반영하지 않았다"고 회의장을 박차고 나오기도 했다. 양측은 결국 '적정한 수준에서 임금을 보장한다'로 타협선을 찾았다.

의료에 대한 공공투자를 강화한다며 지방의 민간병원 45곳을 국가가 인수한다는 방안도 도마에 올랐다. 민간이 운영해도 부실한 곳을 국가가 인수해 어떻게 효율성을 높일 것인지 선뜻 이해가 안가는 대목이다.

근로자 5백명 이상 사업장에 노인 2% 고용을 의무화한다는 방안은 50대 조기퇴직자가 양산되는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해당사자 조정할 묘안 있나=산별교섭 의무화 방안은 노동계-재계 간의 분란을 불러올 가능성이 크다. 회사별로 노조와 회사 측이 임금과 단체협상을 벌여 왔으나 앞으로는 금속노련.금융노련 등 산별 노조대표기구가 기업 측 대표와 일괄협상을 하자는 것이다.

재계는 기업 사정이 다 다르고 산별 협상 결과를 개별 기업들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무의미하다고 반발한다.

단일 기준으로 돼 있는 최저생계비를 지역 별로 차등화하겠다는 계획도 농민들의 저항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 이 안은 대도시와 농어촌 생활비 차이를 기초생활보장제 생계비 지급액에 반영하자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농어촌 생계비는 줄거나 묶이고 대도시는 올라간다.

◇이랬다 저랬다=복지부는 지난 10일 인수위 보고 때 대도시에 보건지소 1백36곳을 세워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들을 돌보겠다고 했다. 하지만 22일 盧당선자 주재 토론회에서는 4백34곳으로 대폭 늘었다.

여기에는 6천억원 가량의 돈이 더 필요하다. 올해 시범적으로 20곳을 설치하려던 복지부의 계획도 예산 우선순위에 밀려 백지화된 적이 있다.

또 인수위의 경제분과에서는 "노조의 정치세력화는 안된다"고 천명한 반면 사회분과에서는 공무원 노조를 인정하고 산별교섭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실패한 정책의 재탕인가=인수위는 전국 일선 지자체에 사회복지사무소를 만들겠다고 했다. 시.군.구와 읍.면.동의 사회복지인력을 보건소와 같은 별도의 조직으로 분리하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이는 90년대 중반 경기도 안산 등 세 곳에 시범적으로 보건복지사무소를 설치했다가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없던 일로 했었다.

또 99년 총리실 산하에 자영자 소득파악위원회를 두고 자영자 소득파악률을 높이려 했으나 신용카드 사용 확대 등의 방향성만 제시하고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이번 인수위가 내놓은 정책에 대통령 직속기구라는 이름으로 되살아났다.

◇방향은 잘 잡았다=보건사회연구원 관계자는 "고령화.저출산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인구 및 가족지원 종합대책을 마련키로 한 대목은 평가할 만하다"고 말했다.

인구 문제에 대해 처음으로 정책적으로 접근하려는 시도다. "모든 부처가 고령화의 문제점을 염두에 두고 정책을 개발.집행해야 한다"는 盧당선자의 인식도 문제에 잘 접근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 ▶암과 같이 진료비가 많이 드는 중환자의 부담을 경감하고 ▶의료기관 서비스 평가제도를 도입하며 ▶소아 예방 접종을 무료화하려는 시도도 대국민 복지 서비스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데 도움이 될 전망이다.

기간제 근로자의 고용 안정도 꾀하고 있다. 계약 갱신을 통해 3년 동안 일하면 사업주가 마음대로 내쫓을 수 없는 방안을 인수위가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성식.김기찬 기자 <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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