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유치환씨 부산서 윤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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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부산]13일 하오 9시 30분쯤 부산시 좌천동 미성극장 앞길에서 시인 청마 유치환(55·예총부산시 지부장·남여자상고 교장)씨가 명신여객 소속 84호 급행「버스」(운전사 박호식·34)에 치여 사망했다. 운전사 박씨는 사고직후 유씨를 차에 태워 부산 대학병원까지 실어다 놓고 도망쳤다. 고 유씨의 유족으론 부인 권재순(58·좌천동 1002)씨 뿐이며 출가한 딸 셋.

<문인장 거행키로>
문협은 장례를 문인상으로 거행키로 했다. 서울 연락소는 (74)8166

<참사 아침에 시 한수>
고 유치환씨 집에는 유씨가 죽던 날 아침, 원고지에 쓰다가 접어 둔 시 한편이 유고처럼 그의 책상머리에 놓여 있었다.

<유고>등성이에 올라
등성이에 올라 보노라면
내 사는 거리는 아슴한 저편 내끝에서부터
내 발밑까지 첩첩히 밀려 닥쳐 있고
이쪽으로 한 골짜기 화장장이 있는 그 굴뚝에선
오늘도 차사의 연기 고요히 흐르고 있거니
저기 거리에선 인간들이 살기에
아무리 아우성이요 아귀다툼일지라도
마침내는 돌아와 저같이 잔잔히 잔잔히
한줌 불귀의 흔적 없는 자취로
거두어짐은
아아 얼마나 복된 맑힘이랴.
그가 설령
지지리 성가심만 부리던 신세였을지라도
제아무리 도도한,
제아무리 이내 애석키만한 이웃이 었기로니
한결같이 한 모양의
그대 길이 무궁한 모습이기도 소원이던가
그러기엔 차라리
저같이 화하여 천지의 호도한 신기속에
섞여짐이
나는 무궁한 것,
무궁한 천지는 내것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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