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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빼 모델 저리 비켜 통 큰 우리 나가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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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 ‘빅 위민 패션쇼’ 무대에 설 이정희·강영희·오경아씨(왼쪽부터)가 전문모델처럼 포즈를 취했다. 최승식 기자

'큰 것이 아름답다(Big is beautiful)'. 다음달 9일 서울 삼성동 섬유센터 이벤트홀에서 막을 올리는 '2005 코리아 빅 위민(Big Women) 패션쇼'가 내건 캐치프레이즈다. 평소 무대를 누비던 말라깽이 모델들은 이날 만은 사절이다. 대신 몸매 만큼이나 마음도, 삶의 방식도 넉넉한 19~33세의 일반 여성 20명이 모델로 나선다.

77 사이즈 이상의 큰 옷을 입는다는 공통점을 지닌 이들은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응모한 200여명 중 오디션을 거쳐 선발됐다. 10대1의 높은 경쟁률을 뚫고 뽑힌 이정희(26.어린이영어학원 상담실장).오경아(24.그래픽디자이너).강영희(19.동서울대 디지털방송미디어학과 1년)씨는 "기분이 좋아 날아갈 것 같다"고 했다.

"선발 기준이 '당당한 아름다움'이래요. 세상이 정해놓은 외모의 잣대에 주눅들지 않는 자신감을 높이 산다는 거죠. 첫 모임(3월 19일)에 가보니 멋진 언니들이 어찌나 많던지 깜짝 놀랐어요."(강영희)

물론 이들에게도 아픔이 없었던 건 아니다. 주변의 압력 때문에 수백만원씩 들여 다이어트도 해봤고, "네가 살만 빼면 얼마나 예쁘겠냐"는 소리에 수없이 상처를 받았다. 심지어 몸이 아파도 "덩치 값 못한다"는 놀림에 시달렸다. 하지만 타고난 성격이 다들 둥글둥글해 가능한 좋은 쪽으로 생각하려 애쓴다.

"대개의 직장 면접에선 날씬한 여자를 선호하죠. 하지만 학부모들을 주로 상대하는 제 일엔 오히려 넉넉한 몸매가 장점으로 작용하는 것 같아요. 대하기 편하다며 저만 찾는 분들도 많거든요."(이정희)

이들은 이번 패션쇼를 계기로 긍정적인 에너지를 서로 나눠줄 수 있게 된 것을 가장 큰 보람으로 꼽았다.

"얼굴과 몸을 머리와 머플러로 잔뜩 가린 채 오디션을 보러온 친구가 있었어요. '그러지마라. 살이 있을수록 머리를 묶고 옷도 몸에 착 붙게 입어야 더 예뻐보인다'고 충고해줬는데 제 말 때문인지 지난 모임 때 보니 많이 달라졌더라고요. "(오경아)

패션쇼 출연이 1회성 행사로 그치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들은 인터넷 카페(cafe.daum.net/tongkengirl)도 만들었다. 카페 이름처럼 '통 큰 여자'들끼리 공감대를 넓히고, 내친 김에 봉사활동도 함께 할 생각이다.

"인터넷에서 '큰 옷'이라는 말을 치면 관련 업체 사이트가 수십개씩 줄줄이 떠요. 그만큼 수요가 많다는 뜻이죠."

이들은 우리 사회가 이런 현실을 인정하고, 부디 몸집 큰 여성들에 대한 특별한 시선을 이제 그만 거뒀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신예리 기자 <shiny@joongang.co.kr>
사진=최승식 기자 <choissi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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