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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기에도 전기코드 꽂아볼까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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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수퍼사운드 김동현 대표가 여성 3인조 그룹 프로토와 함께 전자국악기를 들고 포즈를 취했다. 왼쪽부터 강민아(24·해금)·이현하(21·가야금)·황별님(21·장구)·김 대표(거문고).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서울 역삼동 해주빌딩 4층, 수퍼사운드. 문을 열자 ‘지이징~’ 소리가 흘러나왔다. 이 회사가 지난해 개발한 전자가야금은 전자기타 비슷한 소리를 냈지만 모양새는 판이했다. 롤플레잉 게임 속 여주인공이 마법을 걸기 위해 사용하는 아이템과 비슷했다. 수퍼사운드 김동현(40) 대표는 “3년에 걸쳐 개발한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중고차를 팔아서 산 중고 가야금을 분해한 것이 시작이었다. 명인이 만들었다는 800만원 상당의 악기였다. 손으로 깎아 만들었다는 악기 뒷판에는 전기톱 자국이 선명했다. 김 대표는 “그렇게 단순할 수가 없었어요. 빈 공간을 전자부품으로 채우면 전자악기를 만들 수 있겠구나 싶었죠”라고 했다.

 수퍼사운드는 전자국악기 제작회사다. 영국에서 디자인을 공부하고, 대학 강사를 전전하던 김 대표가 4년 전 세웠다.

사실 무모한 도전이었다. 전통악기조차 판로를 제대로 찾지 못하는 판에 전자국악기라니. 특히나 가야금·거문고는 국악 전공자나 찾는 악기가 아닌가.

 “지금 당장 시작하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았어요. 영국에서 가져온 애지중지하던 자동차를 팔았을 만큼 각오가 대단했죠. 결국 소프트웨어가 아닌 하드웨어가 변해야 국악이 세계적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 것으로 믿었어요.”

 그가 공개한 사연은 이랬다.

 “영국 유학 중 여러 나라의 문화를 볼 기회가 많았어요. 중국하고 일본은 모르는 사람이 봐도 딱 그 나라 공연이라는 걸 알 수 있었는데 한국 문화 행사는 한국인인 저도 이해하기 어려웠어요. 가야금으로 캐논 변주곡을 연주하고 그것에 맞춰 비보이들이 춤을 추더라고요. 외국인이 이걸 보고 ‘저게 한국 문화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을지 의문이더라고요. 그래서 무대에서 들고 다닐 수 있는 가야금을 만들어 보자고 생각했죠.”

 그렇게 4년 전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있는 홈페이지 제작회사의 책상 하나를 월 25만원에 빌렸다. 몸에 착용하는 국악기 개발을 목표로 세웠다. 무대에서 들고 다니면서 연주와 춤이 가능한 악기여야 했다.

 관건은 무게였다. 전자기타에서 사용하는 센서를 가져와 스테인리스로 만든 가야금 틀에 넣었지만 너무 무거웠다. 6㎏이 넘는 악기를 들고 무대를 돌아다니는 것 자체가 노동이었다.

 김 대표는 “가야금에 걸쳐진 스틸 줄의 장력을 견디는 재료를 개발하는 게 가장 힘들었다”고 털어놓았다. 초기 투자비는 대부분 악기 틀 제작에 쓰였다. 틀 제작 한 번에 500만원 정도 필요했다. “‘이번엔 되겠지’라고 생각했던 틀을 공장에서 가져오자마자 줄을 걸쳤는데 틀에 금이 가더라고요. 모두 4번 정도 실패했어요.”

 개발 3년 만인 지난해 틀이 완성됐다. 유리섬유와 알루미늄을 합성한 것이다. 덕분에 악기 무게는 3㎏ 대로 낮아졌다.

그렇게 전자가야금을 비롯해 전자거문고·전자해금·전자장구 개발에 성공했다. 그 동안 마그네틱 센서로 기동하는 안족(雁足) 등 4가지 특허를 출현했다.

  수퍼사운드는 올해 보급형 전자국악기 개발에 주력할 계획이다. 초·중학생이 이용할 수 있는 교육용 모델로 30만원 미만으로 가격을 잡았다.

 그의 신념 1호는 ‘전통의 소리는 건드리지 말자’다. “국악기와 마찬가지로 명주실로 현을 만들면 전통 국악기와 비슷한 소리를 뽑아낼 순 있어요. 하지만 전통악기의 소리는 절대로 건드리지 않는 것이 제 철학이에요. 제가 만드는 전자국악기는 전통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악기라고 할 수 있죠.”

 수퍼사운드는 전자국악기를 홍보하기 위해 여성 3인조 밴드를 만들었다. 지난달 뮤직 비디오 촬영을 마쳤다. 김 대표는 “악기가 공개되면 다양한 음악 장르와 연주 방법이 개발될 것”이라고 했다.

 “전통을 죽이는 것이 아니에요. 대중과 국악을 연결하는 다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러려면 저희부터 신나게 놀아야겠지요. 그러면 돈도 따라오겠죠.”

◆ ‘수퍼사운드’ 창업 비용은 …

김 대표가 영국에서 가져온 승용차를 판 돈과 지인들에게 빌린 4000만원으로 시작했다. 초기 투자금은 대부분 악기 틀 제작에 사용됐다.

새 모델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디자인부터 소재까지 완전히 바꿨는데 이 과정에서 돈이 많이 들어 갔단다.

 지난해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1억 8000만원을 지원받으면서 악기 개발에 속도가 붙었다.

인터넷을 통해 전자가야금이 공개되면서 구매 문의가 적잖게 들어오고 있지만 아직 일반 판매에는 나서지 않고 있다.

 김 대표는 “악기 한 대당 500만원이 넘는 고가다. 개발이 아직 완료되지 않았는데 돈이 필요해서 무턱대고 팔 수는 없다. 양산 시스템과 애프터서비스 시설 등이 갖춰지면 소매를 걷어붙일 작정”이라고 했다.

글=강기헌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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