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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삭제소동 빚은 「루크」지..「맨치스터」의 저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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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당내보수·자유양파 뿌리깊은 반목에 골치>
「텍사스」는 거칠하다. 그곳은 치안을 비웃는다. 각 군마다 「텍사스」인들은 정치적인 식인종들이며 순박한 외부사람이 그들 사이로 비집고 들어오면 산채로 잡아 먹힐 수 있는 곳이다 「야버러」의원과 「코넬리」지사의 싸움은 그들이 태어나기 전부터 시작된 정말 뿌리 깊은 것이었다.
그 발단 이념적인 것이었다. 이른바 자유주의파 후예들인 그들은 자파내에 반란을 일으키고 「텍사스」주 민주당원(DOT)이라는 자유주의 파를 형성했다. 「야버러」가 바로 이 파의 대표였다.
그는 57년 상원의원이 되기전 세 번이나 낙서의 고배를 마셨다. 그는 다른 당원들과 늘 으르렁거렸으나 주 전체에 영향력을 미치는 유일한 자유주의자 인물이었다. 「로스앤젤레스」대회 때 다른 주 당원들이 모두 「존슨」을 지지했으나 그는 「케네디」를 밀었다. 그래서 다른 당원들이 대표단속에 끼워주지 않음으로써 그는 하는 수없이 방청객으로 방청석에 앉아야 했다.
「존슨」은 그들의 신임을 완전히 얻지 못하고 있으며 그의 지지자들의 충성도 불확실한 것이었다. 「존·코넬리」는 「존슨」에게 귀중한 보배였다. 그는 「존슨」의 행정 보좌관이었고 「케네디」의 해군장관이었으며 이제 그는 「존슨」의 「텍사스」주지사다. 사정에 어두운 사람들은 아직 그를 「케네디」·「존슨」사람으로 보고 있다.

<세력장악에만 혈안 교활한 「코넬리」지사>
그러나 그들의 생각은 잘못이다. 「야버러」의 자유주의와 같이 「코넬리」의 보수주의도 철두철미한 것이다. 「코넬리」는 빈민출신으로 출세한 후 빈민층을 깔보는 전형적인 인물이었다, 그는 공손하면서도 간사한 습성을 익혀왔다.
「코넬리」는 「야버러」가 낙선하길 바라면서 대통령의 「텍사스」방문을 통하여 정치자금을 모을 계획이었다.
그는 주 행정 수반으로서 대통령을 맞는 주인이 될 것이다. 「코넬리」가 이 같은 중책을 치러보려는 의도는 10월초에 나타났다.
그는 대통령의 여정을 토의키 위해 동부로 가기 전에 「댈러스」시의 실권자들과 상의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대통령의 방문을 변명한 것에 불과했다. 사실 그가 이번 기회를 이용하여 「아버러」를 깔아 뭉개려 했다면 「텍사스」의 자유주의 파들은 산산이 조각나고 말았을 것이다. 그는 「케네디」가 「텍사스」의 흑인들과 유색인 민주당원 측에 세려를 갖고있다고 보았다.
불행하게도 그들은 가난했고 대통령은 이 여행을 통해 기금모금운동을 벌이고자 했다. 「케네디」는 「코넬리」를 소홀히 다룰 수 없는 것이 큰 고민이었다. 만일 이번 여행이 「텍사스」의 민주당 단합을 과시한다면 그는 기꺼이 갈 작정이었다.

<오찬회 장소 싸고도 백악관의 단안 필요>
「케네디」로서는 「야러버」없는 여행은 차라리 안 하는 것보다 못했다. 「텍사스」의 자유주의 파들은 분노할 것이며 다가올 선거운동에 보복이 있을 것이다.
한편 「코넬리」는 자기의 복잡한 거미줄은 치기에 바빴다. 민주당 전국위원회 간부 「브루노」는 「야버러」의원을 자기 자리에 앉히려는 「코넬리」계획을 알아차렸다. 그런데 이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대통령이 「댈러스」에서 연설하고 따라서 자동차 행렬이 지나갈 길이 결정도리 장소선택 문제가 이에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장소로는 여성회관·공관장·소매시장 등 세속이 손꼽혔으나 「브루노」는 다소 음침하나 노동자들을 끌어 모을 수 있다는 점에서 여성회관이 좋다고 했다. 장소 선택에 대한 최종 결정권은 「브루노」에 있었다.
만일 그가 여성회관으로 하자고 고집했더라면 대통령의 자동차행렬은 「텍사스」주 교과서 창고 밑을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가 주저했기 때문에 이 문제는 결정을 못보고 결국 「코넬리」지사에게 유화책을 쓰고 있던 백악관까지 올라갔다. 결국 11월 14일 대통령보좌관 「켄·오도넬」은 앉을 자리를 층을 지워 만든다는 제안을 기각하고 소매시장으로 장소를 선택했다.
민주당 전국위원회원인 용감한 「바이런·스캘턴」은 한달 내내 불길한 예감으로 고민했다. 3년전 「가톨릭」신자인 「케네디」와 「휴스턴」성직자회의 회의논자들인 기독교 전도사들이 역사적인 대결을 했을 때 그가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휴스턴」에서 이룩한 그의 업적으로 대통령은 그에게 감사했으며 존경하기에 이르렀다.

<측근들은 「합창」하듯 「댈러스」행 수차 만류>
그러나 지금은 「댈러스」에는 순전히 「스캘턴」에 관련된 선동적인 얘기들이 심하게 떠돌고 있다. 11월4일 드디어 그는 법무장관인 「로버트·케네디」에게 편지를 내고 『솔직히 말해 대통령의 여정 속에 「댈러스」시가 포함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라고 건의했다,
「스캘턴」의 모든 노력은 하나같이 실패로 끝났다. 11월 8일 그를 잘 알고 그의 말을 심각하게 들어주던 법무장관이 「오도넬」에게 편지를 냈으나 「오도넬」은 그 생각은 아무도 믿지 않은 그의 직감에 불과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오욕 물든 댈러스 시사 「스티븐슨」도 당할뻔>
60년 선거유세 때 「댈러스」의 한 가정주부는 「존슨」에게 가래침세례를 가한 일도 있다. 더욱이 그 후 「아들레이·스티븐슨」「유엔」대사는 10월 24일 바로 「유엔·데이」에 「댈러스」에서 폭행을 당할 뻔했다. 「댈러스」를 보다 깊숙이 관찰해보면 해볼수록 누구든지 더욱 심하게 우려하게 된다.

<나 같으면 안가겠어요 풀 상원외위장도 말려>
대통령 자신에 대한 가장 뚜렷한 경고는 「텍사스」주 인접주인 「아칸소」주 출신의 자유주의자 「윌리엄·풀브라이트」상원의원이 할 것이다. 그는 「댈러스」시의 정치적 폭동역사에 비추어 「댈러스」를 철저하게 불신했다. 「풀브라이트」위원은 대통령에게 『「댈러스」는 매우 위험한 곳입니다. 나 같으면 안 갑니다. 제발 가지 마십시오.』라고 말하면서 「댈러스」를 우회하도록 간청했다. 「댈러스」시에서도 위험신호가 있었다. 사설로써 시민들에게 자제하도록 요구한 신문도 둘이나 있었다.

<험한 「댈러스」분위기 「워린」조사위선 외면>
결국 끔찍한 사건이 발생하고 말았다. 이 합창과 사건이 사이에는 충분히 탐색해 낼 수 없는 깊은 심연이 있다. 비극의 사건이 있은지 10개월이나 지나도 「워린」위원회는 「리·하비·오즈월드」의 범죄와 「댈러스」시의 「일반적인 증오 분위기」사이에 있을 어떤 관성에 대해 「아무런 증거」도 찾아내지 못했다. 개개의 의원들은 심한 회의를 품었으나 전체 의견은 편의주의로 흘렀다.
그러나 그들은 비록 「오즈월드」가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해도 「댈러스」시의 현정치적 소란으로 빚어진 결과라고 판단할 길이 없다고 결론지었다.
여기에 주요한 열쇠는 바로 「판단」이란 말이다. 우리가 이 문제를 논한다면 결국 추측을 할 도리밖에 없다. 합리적인 추측은 역사가들이 할 의무의 하나다.
확실히 「댈러스」의 암살범은 지금까지 있은 범죄음모와 같은 그러한 것을 하지 않았다. 「오즈월드」는 「고독한 사나이」로 불려졌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 말은 그를 잘 나타내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말은 전적으로 틀렸다. 그가 외가닥의 마음씨를 기진 것은 사실이나 모든 암살범은 외골수로 달리기가 일쑤이다.
인간의 일거일동은 그가 살고 있는 사회, 행동할 수 있는 시간에 따라 제약을 받는다. 「존·윌키스·부즈」는 남북전쟁 당시 남부연맹의 첩자는 아니었다.
「링컨」대통령은 남부의 동조자들이 들끓고 선동적 얘기에 마비된 도시에서 역사적인 결정적 순간에 「부즈」손에 숨졌다. 「포드」극장의 사건이 위기에 동요되지 않는 지방에서 일어날 수 있다는 것. 즉 아무런 관련성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우스꽝스럽다.

<살인의 고장「텍사스」「댈러스」는 그 중심지>
「케네디」대통령재임 3년째의 해에 「댈러스」에서는 지금까지의 정치에서 찾아볼 수 없던 심한 동요를 암시하는 정신병과 심한 「히스테리」징조가 있었다.
「텍사스」는 살인이란 점에서 미국에서 단연 제1위이며 그 중에서도 「댈러스」가 으뜸이다
「댈러스」에서 매월 발생하는 살인사건은 영국전체보다 많다. 더욱이 4건의 살인 사건 중 약 3건 (72%)이 총격사건이다. 그런데도 「댈러스」에서는 총기등록이 필요치 않다.
63년 초부터 비극의 날 11월 22일까지 「댈러스」에선 총 1백10건의 살인사건이 있었다. 「뉴·프런티어」에 대한 앙심에 찬 적의는 「올드·프런티어」(흑인을 동원하는 개척정신)의 진가를 못내 아쉬워하고 있는 데서부터 출발한다. 「케네디」를 솔직히 황야의 사나이로 보는 사람은 없었다.
그의 사유재산이나 「뉴·잉글랜드」의 빡빡한 발음은 이들의 비위를 거슬리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그가 「댈러스」의 향토적인 본성에 정면도전한 것이 그들의 분통을 샀다.
정신적인 분노가 「댈러스」 「모닝·뉴스」지 사설에 터져 나왔다. 「케네디」의 「텍사스」방문 2개월 전부터 이 신문은 대통령 이름에 먹칠하기 위해 「케네디」에 전면공세를 취했다.

<높이 다른 구두신고 「캐롤린」불러 「안녕」>
11월 21일 아침식사 전 대통령은 의학상의 이유로 왼쪽뒤 굽이 오른쪽 것보다 약 0.6「센티」높은 구두의 끈을 매고 비서가 골라 준 옷을 입었다. 그리고 PT 「보르」가 새겨진 「타이핀」을 「넥타이」에 꽂고 가죽 지갑에 지폐 26「달러」와 지갑에 달린 금배를 넣었다.
이러한 그의 모습은 패기만만하고 성공한 전형적인 미국 아버지같이 보였다. 그는 「캐롤린」·「존」하고 불렀다. 그들은 뛰어내려왔다. 「재키」가 애들의 머리를 곱게 빗겨주어 아침식사 때보다 훨씬 예쁘게 보였다.
9시 15분 「캐롤린」은 학교에 가야했다. 딸은 아버지에게 매달리면서 「바이·대디」(아버지 안녕)하고는 가버렸다.
대통령은 비서 「링컨」여사에 전화로 『일기예보는 어떤가.』고 묻자 그녀는 10시 42분 이틀동안 「텍사스」는 덥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그는 전화로 「재키」의 하녀를 불러 『시원한 옷을 꾸리라.』고 황급히 말했으나 때는 늦었다. 이미 「재키」의 옷은 「헬리콥터」에 실려있었다. 자기부인이 즐거운 비행을 맛보도록 하겠다는 그의 모든 사전준비는 깨지고 말았다.
「매큐」준장이 잘못했다. 그는 대통령에게 날씨가 시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잘못된 날씨 보고에 「재키」옷 준비로 노발>
대통령은 「매큐」장군을 전화로 힐책하고 「오도넬」을 불러 『제기란 지금이라도 그곳 공항에 알아봐. 「링컨」여사 말이 옳아.』하고 노발대발했다. 그는 그의 집무실을 떠났다. 2층에서 「재키」하녀를 만났다. 『「존」을 데려와. 데리고 갈 테야.』라고 말하자, 작은 비옷에 방풍 모를 쓴 「존」이 뛰어나와 좋아 날뛰었다. 백악관 「헬리콥터」착륙장에는 이미 일행과 전송 객들이 보여있었다.
「존」과 「링컨」여사 그리고 군사 보좌관 「즐리턴」소장과 경호원 3명은 1호기에 주치의 「버클리」박사는 2호기에, 백악관기자와 공보비서대리 「매클리더프」는 3호기에 각각 탔다. 이윽고 가랑비 속에 모자도 쓰지 않은 「케네디」가 나와 1번기에 올라탔다. 장미 뜰에서 「재키」가 나타났다. 그녀는 흰털로 된 「투피스·드레스」에 외투를 입고 「헬리콥터」에 올랐다. 「케네디」는 일기예보를 잘못 전해준 「매큐」를 노려보았다. 「헬리콥터」의 회전날개가 돌기 시작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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