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10화(4) - 이해랑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오이디푸스」와 「햄릿」같은 등장 인물이 소설에 나오는 인물 보다 훨씬 우리와 가깝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매력적이고 영원한 까닭은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처럼 스스로 제구실을 다하지 못하고 배우의 힘을 빌어야만 비로소 제구실을 할 수 있는데 있다. 배우가 분장을 하고 무대에서 각광을 받아야만 희곡의 인간은 비로소 생명을 얻을 수가 있는 것이며 또 우리와 같이 생활을 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적인 매력을 희곡에다 부여하고 그것을 행동으로 번역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소위 연출인 것이다.
연출이 전문적으로 본업을 하게된 것은 역사극의 분야에서 「리얼리즘」을 시도하였던 19세기 후반기의 일이었다.
이치로는 희곡이 작가 한 사람의 머리를 통하여서 나온 것이니까 그것의 무대에의 번역도 한 사람의 두뇌를 통하여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서 그 전에 「소포클레스」와 「셰익스피어」와 「몰리에르」같은 사람들은 극단의 책임자로서 극작과 함께 연출을 겸하였다.
그런데 연출은 희곡과 그 상연의 중간에 위치하여 어디서 어디까지가 연출의 할 일이란 정확한 한계를 따질 수가 없다. 그러면서 연극 전체의 조화를 위하여 희곡에서부터 배우의 연기·장치·조명·소품 등 그 상연에 이르기까지 그의 손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그래서 그는 희곡과 그 상연의 중개자에 불과하면서도 때로는 협조자 전원에게 명령을 하고 또 총지휘자로서 연극의 주인공의 얼굴 노릇을 하는 것이다. 처음부터 배우를 위협하고 호통을 치기에 바빠 가지고 정작 연출가가 해야 할 「앙상블」에 관한 일은 보지 못하는 연출가도 있다. 그저 집으로 들어가는 간단한 장면을 수없이 되풀이하여 연기자와 얼을 빼놓고 또 마구 호통을 쳐서 연기자를 울려 놓고는 그 당장에 자연스럽게 웃지를 못한다고 욱박 지른다. 희곡이 문학 작품으로 출판되어 극작가가 극장 문밖으로 나가버린 후 극장에서는 그를 대신하여 같이 생활을 하며 연극 전체를 책임지고 지도하여 줄 사람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러한 작업의 기수로서 연출가의 세력은 확대되고 오늘의 연극은 연출가의 작품으로 그의 서명을 필요로 하는 것이 되어 버렸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모든 연극부문 위에 서서 마치 제왕과 같이 연극을 지배하며 심지어는 배우를 부인하고 땅 재주를 넘게 하는 가 하면 배우를 소품과 같이 취급하며 그들 자신이 직접 관객과 대화를 하려고 서두르고 있다.
그러나 연극은 극작가의 독점 물 인 것을 바라지 않았던 거와 마찬가지로 또 한 연출가의 목재를 바라고 있지 않다.
진정한 연출가는 오히려 연극에서 그의 얼굴을 보이려하지 않는다. 언제나 배우를 통하여 배우자신이 모든 것을 제 힘으로 창조한 것처럼 느끼게 하면서 그 뒤에서 조용히 관객과 대화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 나라와 같이 연습기일이 짧은 곳에서는 연출가의 의사를 연기자에게 침투시킬 시일이 없다. 그래서 연출은 어디서 나오고 서고 들어가고 하는 「교통정리」에 그치는 수가 많다.
『이거 내일 모레 막을 올려야 할 텐데 아주 캄캄합니다.』
『이 사람아 전깃불을 켜고 할텐데 무슨 걱정 야.』
서로 부딪칠 염려는 없으니 걱정 말라는 연출가의 대답이다. <연출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