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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아산병원 역차별 당할까?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2년 여를 끌어온 연구중심병원 선정이 코 앞에 다가왔다. 서류심사와 실사를 받고, 지난 토요일엔 최종 프레젠테이션을 마쳤다. 이번 주 내로 연구중심병원 선정 최종 결과를 발표한다는 게 보건복지부의 방침이다. 그동안 연구중심병원 기준에 따라 대장정을 달려온 병원들은 합격자 발표를 기다리는 수험생의 기분으로 밤잠을 설치고 있다. 서류심사라는 1차 관문을 통과한 병원을 중심으로 최종선정을 기다리는 병원들의 모습을 담았다.

빅4병원, 성모병원 탈락에 충격…가장 강력하지만 가장 불안한 후보

지난 3월 16일, 1차 서류심사 발표가 있었다. 1차 관문에 통과한 빅4 병원은 말을 아꼈다. 강력한 후보로 꼽히던 서울성모병원이 탈락한 이후 충격을 받은 모습이었다.

▲ 삼성서울병원은 삼성유전체연구소, 재생의학연구소, 의공학연구소 등을 출범시켜 연구중심병원 전환을 위한 준비 체제를 갖출 계획이다. [사진제공=삼성서울병원]

각 병원 연구중심병원 관련 실무자는 언론과의 접촉도 극도로 피했다. 삼성서울병원 연구중심병원 관계자는 “지금 가랑잎 바스락거리는 소리에도 놀라는 심경이다. 말 실수 하나라도 혹시나 밉보일까 두려워, 언론에 보안관리와 평판 관리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대병원도 마찬가지였다. 국립대라는 점이 오히려 마이너스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걱정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기존에 많은 혜택이 있었던 탓에 오히려 역차별을 당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는 것. 서울아산병원 역시 인터뷰를 고사했다. 김청수 아산생명과학연구원장은 “최종 발표를 앞두고 굉장히 조심스럽다. 만반의 준비를 했지만 작은 것 하나라도 혹시 누가 될까 인터뷰는 조심스러운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한편 연구중심병원 관련 외부 전문가는 “연구중심병원은 향후 의료계를 이끌어갈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국가에서 야심 차게 준비하는 프로젝트다. 그런데 첫 선정 대상이 기업에 기반한 병원에 돌아가는 게 모양새가 좋지 않다는 얘기도 항간에 들린다. 또 기업 자금력이 있어 꼭 선정되지 않아도 스스로 연구중심병원으로 전환 가능하다는 얘기도 있다. 그래서 서울아산병원과 삼성서울병원은 가장 강력한 후보들임에도 불구하고 가장 불안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세브란스병원도 초조하긴 마찬가지다. 세브란스병원 의과학연구처장 송시영 교수 역시 편치 않은 모습이었다. 특히 세브란스병원은 주인이 없는 병원인데다 자금 확보가 어려워 연구중심병원 선정을 받지 않으면 굉장히 어려워지는 처지에 놓인다. 빅4 중 연구비가 가장 절실한 병원이라고 볼 수 있다. 송 교수는 “우리병원은 연구중심병원에 모든 걸 다 걸었다. 다른 빅4 병원들은 떨어지더라도 어쨌든 연구중심병원으로 전환할 것이라 하지만 우리는 자금력이 없다. 당장 연구직을 늘리고 임상의사 수를 줄이면 진료비에서 나오는 수입이 크게 줄어 병원 운영 자체가 힘들어 질 수 있다. 서울대병원처럼 정부의 지원을 받는 국립병원도, 삼성·아산처럼 자금력이 있는 기업병원도 아니다. 정부의 지원이라도 받지 않으면 정말 힘들다”고 말했다. 송 교수는 “아무런 지원도 못 받는 사립대병원 중 한 곳은 선정돼야 형평성에 맞지 않겠냐”고 말했다.

한편 1차 평가에서 떨어진 서울성모병원은 침통한 분위기다. 서울성모병원 관계자는 “빅5 중 임상진료실적은 좀 밀리더라도 연구력은 강한데, 서류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오류가 있었던 것 같다. 연구실적 자체가 밀리는 건 절대 아니다”고 말했다.

1차 통과 강소 병원들, “우린 죽을만큼 절실”

1차 평가 발표 뒤 희비가 엇갈리는 병원들이 있었다.
연구중심병원 선정 원서를 낸 총 25개 병원 중 1차 서류심사를 통과한 병원은 13개 병원이다. 서울대병원, 삼성서울병원, 서울아산병원, 세브란스병원, 길병원, 경북대병원, 고대구로병원, 고대안암병원, 아주대병원, 이대목동병원, 분당차병원, 서울대치과병원, 전북대병원 등이다. 서울성모병원을 비롯한 강남세브란스병원, 건국대병원, 부산대병원, 분당서울대병원, 인하대병원, 화순전남대병원, 연세대치과병원은 탈락했다.

그 중 초미의 관심을 끄는 병원은 분당차병원, 고대안암병원, 고대구리병원, 이대목동병원 등이다. 지방대병원 중에선 전북대병원도 주목을 받고 있다.

이들 병원은 인터뷰에 성실히 응했다. 최선을 다해 준비했고, 눈치 볼 것을 떠나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붙잡고 싶다는 심정을 토로했다. 속을 들여다보면 저평가된 병원도 많았다.

이대목동병원의 경우 여성암을 집중적으로 연구한다는 계획을 내놨다. 보건복지부 병원특성화 프로젝트에 지정돼 여성암 정복에 관련된 연구비로 100억원의 연구비를 수주한 바 있다. 김승철 이화융합의학연구원장은 “우리 병원은 여성암 연구에 선도적인 연구성과를 보이고 있다. 작년 봄 이화융합의학연구원을 설립하고, 각종 연구자재를 구비해 연구전담 의사를 배치하는 등 체계적으로 준비했다. 이런 과정이 있었기에 복지부의 까다로운 연구중심병원 자격 요건을 무리 없이 충족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대목동병원은 여성암과 신개념의료기술, 희귀난치질환에 중점을 두는 연구중심병원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분당차병원 또한 이번 1차 심사에 통과한 강소병원이다. 차병원은 줄기세포 연구에 특화한 연구중심병원을 지향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함기백 연구원장은 “차병원은 줄기세포만 집중 연구해온 유일한 병원이다. 한국이 국제 무대에서 줄기세포 연구를 선도하기 위해선 우리 병원이 꼭 선정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미 그룹 차원에서도 연구에 모든 역량을 집중할 준비가 돼 있다. 정부가 힘을 실어주기만 한다면 날개를 달고 나아갈 모범적인 연구중심병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고대 또한 의외의 결과를 보였다. 고대는 연구중심병원 얘기가 나오자 가장 발 빠르게 움직이는 병원 중 하나였지만 정부 지원금이 없다는 내용이 발표되자 크게 낙심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내부 동요도 많았던 곳 중 하나다. 하지만 이번 서류평가에서 고대안암병원과 고대안산병원 두 곳 모두 선정되는 등 적어도 연구력을 인정받았다는 평가다. 분당서울대병원과 강남세브란스병원이 탈락한 것에 비하면 좋은 성적이다. 고대안암병원 최재걸 연구부원장은 “우리 병원은 개원 초부터 연구력이 강했다. 연구박사를 많이 고용했고, 연구비 수주도 상당히 많다. 최근 3년간 26건의 기술을 이전해 11억 7000만원의 기술이전료를 받았다. 우리 병원은 향후 맞춤치료분야에 특화한 연구를 중점적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북대병원은 경북대병원과 함께 지방에서 유일하게 1차 서류심사를 통과한 병원이다. 지방 안배를 고려해 둘 중 하나는 선정 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특히 전북대병원은 예전부터 기능성식품과 의약품 연구로 특화된 바 있다. 조백환 의생명연구원장은 “우리 병원은 1990년대부터 이미 연구중심병원의 기틀을 닦아 왔다. 국책 사업도 많이 따 왔고, 특히 기능성식품, 의약품, 의료기기 분야에 많은 연구를 해 왔다. 병원 수입의 5% 이상을 연구비로 충당하고, 이미 기술이전료도 상당하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연구수익료를 병원의 진료 수입에 대비한다면 중간 정도 수익이 있는 진료과와 한 해 수입이 비슷한 정도”라고 말했다.

연구전담의사현황·시설장비·연구실적 등 까다롭게 평가해

이번 연구중심병원 선정에는 어떤 자격요건이 필요로 했을까. 크게 연구조직, 시설•장비, 인력, 연구실적, 운영계획에 대한 1차 서류심사를 했다.

연구조직에 있어서는 연구관리를 위한 의사결정조직이 있는 독립적인 행정관리체계가 갖춰져 있는지 평가한다. 의료기관은 연구행정관리체계가 존재하는 조직도와 정관, 연구비계정, 연구비 회계기준, 인사제도 등을 자세히 기입해 제출했다.

▲ 지식경제부 중재시술로봇 개발사업 주관 기관으로 선정된 서울아산병원의 의료진이 현대중공업 등 국내 최고의 산, 학, 연 기관과 함께 환자에게 최적화된 첨단 의료로봇 개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제공=서울아산병원]

시설장비에 있어서는 생명자원은행이 있는지도 포함됐다.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 32조에 의거해 개설 허가를 받은 유전자 은행, 또는 이에 준하는 인체유래물은행을 개설해야 한다. 임상시험센터, 연구장비, 연구시설과 공간, 산학연공동연구인프라를 갖추는 것도 포함됐다.

연구인력 기준도 까다롭다. 상급종합병원의 경우 총 의사 대비 연구참여 임상의사의 비율이 20%가 넘어야 한다. 종합병원은 15%다. 연구참여 임상의사는 업무의 평균 30% 이상을 연구에 할애해야 하고, 최근 3년간 연구논문 실적이 있어야 한다. 전공의는 포함되지 않는다. 또 임상은 하지 않고 연구만 하는 연구전담의사는 5명이 필요하다(상급종합병원은 5명, 종합병원은 3명). 연구전담요원은 연구참여임상의사 수에 0.3배를 곱한 수에 연구전담의사 수를 더한 만큼이 있어야 한다. 인력 운용비가 만만치 않은 부분이다.

연구실적은 최근 3년간 해당의료기관의 지식재산권 건수가 15건 이상이어야 하며, 임상시험과 신의료기술 실적, 기술이전료도 실적평가에 포함된다. 또 최근 의료수익 대비 연구비가 5%가 넘는지도 평가한다. 그밖에 연구비 투자 확보계획과 연구인력 확보계획, 중점 연구분야 설정 등도 최종 평가에 반영될 예정이다.

이들 평가 성적을 바탕으로 현장실사와 최종 프레젠테이션까지 거친 뒤 현재 결과만 기다리고 있다. 심사 결과는 26일로 예정돼 있지만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서 복지부로 자료가 넘어와 결과가 최종 발표되기까지는 시간이 하루 이틀 더 걸리지 않겠냐는 전망이다.

선정될 병원은 몇 개 병원일지, 지원범위가 어느 정도일지 아무것도 발표된 게 없다. 복지부 이선규 사무관은 “지원 금액이 없다는 것은 확실하다. 연구중심병원에 대해선 아직 아무것도 알려드릴 게 없다”며 말을 아꼈다.

선정된 병원은 어떤 혜택을 볼 수 있을까. 정작 복지부는 아무런 혜택도 ‘보장’하지 않았지만 많은 병원에서는 몇 가지 혜택을 예상하고 있다.

첫 번째는 세제 혜택이다. 연구비로 쓰인 돈에 대해서는 세금 혜택이 있을 것이라는 것. 그리고 연구자의 연구비 운용에 대해서는 자율권이 보장되지 않겠느냐는 예상도 있다.

두 번째는 인력 지원이다. 의대생이나 이과대생이 국방의 의무를 하는 대신 연구중심병원에서 근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연구중심병원을 준비하는 한 병원 관계자는 “한 명당 수 천 만원에 달하는 인건비를 부담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병역 혜택이 있으면 연구원 충원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세 번째는 연구비 수주에 대한 혜택이다. 연구중심병원에 선정되면 아무래도 국책연구나 기업에서 발주한 연구 등을 수주하기가 훨씬 쉬울 것이라는 것이다. 관계자는 “국가 지정 연구중심병원이라는 타이틀만으로도 어느 정도 브랜드 활용 효과는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금전적 혜택에 대핸 희망도 남아있다. 한 대학병원 관계자는 “지금 당장은 복지부에서 예산 확보가 어렵다고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예산이 확보되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있다. 또 미래창조과학부에서 연구지원비를 관할하는데, 이 곳으로부터 연구비가 할당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도 있다.”고 말했다.

분당차병원 함기백 교수는 “불과 몇 년 지나지 않아 우리나라 전체 인구가 줄고 병원 외래 인구도 준다. 병원을 유지하려면 어쩔 수 없이 연구중심병원으로 가야 한다. 이번 주 최종 발표가 병원계 백년대계를 뒤흔드는 가장 큰 변화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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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지영 기자 jybae@joongang.co.kr <저작권자 ⓒ 중앙일보헬스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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