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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지자체마다 서두는 컨벤션센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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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지방자치제가 실시된 이후 각 시.도가 시.도민을 위한 수익사업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와 관련해 여러 곳에서 전시 및 국제회의 유치를 새로운 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다.

주민들의 생활과 밀접한 데다 단체장들의 차기 당선에 도움이 될 사업들이기 때문에 이 사업을 숙원사업으로 강력히 밀어붙이는 곳이 적지않다.

우연한 기회에 모 시의 전시장 및 컨벤션 단지 건립에 관한 타당성 조사 기획서를 본 일이 있다. 이 기획서를 보니 부실한 기본계획과 전문가의 부족으로 돈만 허비할 가능성이 큰 상태였다. 타당성 조사의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요소인 수익성 평가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전시.컨벤션 센터는 가동률이 최소 60%는 돼야 손익 분기점에 이른다. 그러나 어느 시.도가 전시.컨벤션의 유치 계획을 제대로 짜고 있는지 궁금하다. 행여 가동률이 20~30%에 그쳐 애써 지은 전시.컨벤션 단지가 속빈 강정이나 애물단지로 전락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기획서에서 본 문제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정확한 근거가 미흡했다. 수입을 계산할 때 극장식이든, 연회식이든 평당 몇 명이 차지해 수입금액이 얼마가 된다는 식의 제대로 된 계산을 찾아볼 수 없었다.

둘째, 연도별 수입 지출 금액조차 추정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기획서는 수입.지출 예상치를 4년 단위로 계산했다. 전시 및 컨벤션이 올림픽이나 월드컵처럼 4년마다 열리는 행사인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타당성 조사의 기본이자 가장 중요한 요소인 수익 예상치는 향후 15~20년분이 연도별로 계산돼 있어야 한다. 또 미래의 수입을 현재 가치로 환산해 수입.지출을 계산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셋째, 고정 비용이 누락돼 있었다. 비용계산에서 가장 중요하고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이자.감가상각비.세금.보험 등 고정 비용이 계산되지 않은 것이다.

타당성 조사를 두번이나 했고, 그것도 외국의 유명 회사에서 했다는데 이런 식이었다. 담당자나 자문위원들은 이 내용들을 어떻게 분석.평가했는지 궁금할 정도였다. 쓸데없이 외화만 낭비한 것 아닌지 우려된다. 이런 문제가 이 도시만의 일이라면 다행이다.

관광 자원이 부족한 우리 현실에서 전시.컨벤션 사업을 육성하기 위해선 다음과 같은 기본적인 사항들을 재점검해야 한다.

우선 조직을 일원화해야 한다. 현재 전시 및 컨벤션센터는 이원화된 조직에서 운영되고 있다. 전시장은 산업자원부와 KOTRA, 국제회의는 문화관광부에서 주관하고 있다.

그러나 전문적.전략적인 전시.컨벤션 사업의 성공을 위해서는 각 부처가 실제 업무를 맡더라도 두 곳의 업무를 부드럽게 하기 위해 교통정리를 담당하는 부서가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관광공사의 역할을 키워 모든 정보 교환이나 업무 보조를 일원화할 수 있는 CVB(Convention & Visitors Bureau)를 구축하는 것이다. 시카고가 전시장 및 컨벤션 도시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은 CVB의 역할이 컸기 때문이다.

시카고는 또 컨벤션을 효율적으로 유치하기 위하여 웹사이트에 RFP(Request For Proposal)란을 만들어 쉽게 정보를 주고받는 체계를 구축하고, 항공.숙박.교통.문화.관광 등을 하나로 묶은 토털 마케팅을 전개했다.

반면 서울시의 웹사이트(www. metro.seoul. kr)에서 30분 동안 전시 및 컨벤션 관련 정보를 찾아봤지만 실패했다.

또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전문가를 육성해야 한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전후하여 각종 국제회의 및 전시가 많이 있게 되자 PCO(Professional Convention Organizer)란 회사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필요한 것은 회사가 아니라 그 구성원인 전문 인력이다. PCO라는 용어도 해외에선 생소하다. 오히려 전시나 회의를 전문적으로 기획하는 CMP(Certified Meeting Planner)가 필요하다. 그래야 해외 전문가들과 통할 수 있다. 또한 문화 산업과 연결시켜야 한다.

전시장이나 회의에 오는 사람들은 모임 후의 저녁시간을 즐기려 하는데 이들을 위한 기획성 행사를 하여 이들이 시.도의 문화를 만끽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각 시.도의 특유한 문화를 연결하여 관광사업으로 육성하면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라스베이거스는 도박 도시의 특성을 살려 컨벤션 도시로 거듭나고 있고, 올랜도의 경우 디즈니랜드를 컨벤션과 같이 묶어 전시회와 컨벤션을 유치하고 있다.

허 양 회 <미국 유타 주립대 교수 관광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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