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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애의 개가|1천만원 피탈 사건 주범이 자백하기까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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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농협 부산진 지소 1천3만원 피탈 사건은 부산 시경 산하 1만6천여명 (연인원)의 경찰관이 동원, 끈덕진 수사 끝에 4일 상오 1시쯤 동 사건의 주범이며 농협 부산진 지소의 계산 담당 주무인 최진상(35·당감동 253)의 자백으로 사건 발생 16일만에 풀렸다.
경찰도 혀를 내두를 만큼 1개윌여에 걸친 치밀한 계획으로 이루어진 범죄의 한 모퉁이가 무너지기 시작한 것은 담당 형사의 눈물겨운 인간애와 끈덕진 설득 때문이었다. 주범 최진상의 자백을 받은 동부서 지춘식(42) 형사는「경찰관 생활 19년만에 처음으로 가슴이 뭉클함을 느꼈다』고 숨김없이 털어놓았다.
◇단서 포착
수사 첫 단계부터 농협 부산진 지소 사환 추교영(29)씨와 최진상의 신변 보호책을 맡아왔던 지 형사는 구랍 29일 밤 『「한탕하자」면서 현금 4천원을 최진상으로 부터 받았다』는 추씨의 자백에 힘을 얻었다. 지 형사는 그때부터 『사건의 「키」는 최에게 있다』고 심증을 굳히고 최의 자백을 받은 4일 자정까지 만6일 동안 최의 곁을 떠날 줄 몰랐다. 지 형사는 3일 밤 7시쯤 사비 40원을 털어 김밥을 사서 유치장에 있는 최에게 넣어주고「파고다」 담배 한 개비를 권하면서 『네가 주범이라는 것은 내가 알고 있다. 네가 순순히 자백하면 너의 처와 딸의 생계는 50만원 상금으로 내가 전적으로 돌보겠다』고 타일렀다.
지 형사는 최를 타이르고 헤어질 때 『언제든지 내가 필요하면 부르라』는 말과 함께 지 형사 자신이 덮던 담요 2장을 안겨주었다. 지 형사의 따뜻한 마음씨와 준절한 타이름… 한때 열렬한 기독교 신자였던 최는 가난에서 비롯된 사회 불신과 저주에 굳어진 비뚤어진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했다. 그러나 결정적인 자백은 하지 않았다. 지 형사는 하도 답답한 마음에서 부근 점장이를 찾아가 점괘를 짚어보았다. 미신이긴 하지만 『진범은 잡힌다』는 점장이의 말에 그래도 한가닥 희망을 걸면서 경찰서에 들어섰다.
이때 지 형사에게 「최가 만나잔다」는 기별이 왔다.
◇주범의 자백
최는 찾아온 지 형사를 보기가 무섭게 목을 끌어안으며「형님! 형님!』하고 목이 메었다. 「이사건의 범인은 납니다. 나의 처와 딸은 형님이 책임져주시겠지요』 이때의 시간이 3일밤 8시 40분.「좋다. 너는 죄의 댓가를 깨끗이 치르고 참사람이 되기를 빌면서 나는 너의 집을 성심껏 돌보겠다」고 지 형사는 최에게 약속해주었다. 지형사가 껴안은 최의 어깨는 흐느낌으로 물결치듯 흔들렸다.
◇범행 모의
16세때 금융조합 사환으로 들어간 주범 최는 63년도에 농협 부산지부 동래본소 임시직원에서부터 출발. 작년 6월 부산진 지소로 전근되면서 서기로 승진되었으나 빚돈 15만원 때문에 늘 고민해왔다는 것. 가족은 27세의 젊은 부인과 네살난 딸 하나. 빚에 쪼들리다못해 엉뚱한 생각에 사로잡혀왔다.
최는 작년 11월 하순쯤 10년전 친구인 김삼주 집에 우연히 놀러가 서로 신세 타령을 하다가 이번 어마어마한 범행을 모의하게 되었다는 것.
구랍 12일 최는 마지막으로 농협 사환 추교영씨를 매수키 위해 김순근이 준 공작금 1만원가운데서 4천원을 떼어주면서『모른 체하고만 있으라』고 했다.
구랍 14일 하오 이들은 남포동 통술집 은호정에 모여 암호와 「릴레이」식 신호, 범행후 도주 경로 현금 은닉처 등 완전 범행을 위해 마지막 손질을 하고 범행 이틀전인 구랍 17일 하오에는 김효정이 운전하는 부산영517호시발「택시」를 타고 예행 연습까지 했다는 것.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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