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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의 주인공을 찾아서(완)평신정으로 북한탈출 민경태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다시 태어난 기쁨입니다.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삶이 제 편을 들어주었습니다. 이젠 어떤 일이 있어도 한이 될 것은 없습니다. 벅찬 감격만이 있을 뿐이지요.』
지난 9월14일 중국산동반도 앞바다 30「마일」해상에서 고기를 잡다 6명을 죽이고 9명을 감금해 북괴어선 평신정을 뺏어 타고 일본하관으로 망명, 그곳에서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형님 민충기(하관주재부영사)씨를 만나고 복강을 거쳐 조국대한의 품에 안긴 민경태(31)씨는 누가 뭐래도 자기는 이 해의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 했다. 『19명이 타고있던 1백46「톤」짜리 기선 저인망어선을 네 사람이 힘을 합해 6명을 죽이고 9명을 선실에 감금할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등골이 오싹하지만 통쾌함을 또한 금할 수 없다』고 했다.
그 날(9월14일) 산동성 앞바다는 초속 8「미터」의 바람이 불고 보슬비가 내려 음산했다고 그는 회상했다.
북한을 탈출할 틈을 노리던 민씨는 평소부터 마음이 통해있던 장대형·이창호·안병록씨 등 3명과 함께 이날 새벽 거사할 것을 약속, 『무기를 뺏고 몇 놈은 죽여야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6명이나 많이 죽이게 될 줄은 몰랐다』고 했다.
『배안에는 기관총 1정·따발총 2정·소총 2정 도합 다섯 자루의 총이 있었지요. 새벽 4시 살며시 일어나 총이 있는 선실로 갔더니 아무도 없더군요. 한 자루씩 가지고 무전실·기관실·조타실을 점령하려고 살살 기어가는데 조기장이 어둠 속에서 불쑥 나오지 않겠어요. 나도 모르게 방아쇠를-.』
총성이 울린 김에 무전실에 뛰어들었더니 무전사가 벌써 「키」를 두드리고 있더라고. 또 1발-그리고 선장실에 뛰어들어 마구 갈기고 장대형씨 등 한패는 기관실로 내려가 반항하는 3명을 쏘았더니 나머지 9명이 살려달라고 손을 들어 결국 한 5분만에 배를 완전히 장악했다는 것.
『그러나 문제는 약1「킬로」해상에 있는 요선의 추적이 걱정되더군요. 그런데 마침 하느님이 도운 건지 초속 8「미터」이던 바람이 갑자기 12「미터」이상의 광풍으로 몰아치지 않겠어요. 됐다, 이 바람이면 그놈들도 정신이 없을 게다. 항로를 남으로 돌렸지요.』 민씨는 탈출에 성공한 것이 사람의 힘만은 아니라 했다. 『배가 낼 수 있는 최고속도는 시속l2「노트」였지요. 기관실이 파열해도 좋다, 폭발해도 좋다, 운명을 하늘에 맡기고 터져라고 속력을 냈지요. 폭풍속을 잘 달리더군요. 그런데 뜻밖에 쿵하더니 「엔진」이 툭 끊어지지 않겠어요.』 간담이 서늘했다 한다. 웬일인가 하고 기관실에 가보니 누군가 「엔진」시동「스위치」를 꺼 놓았더라는 것.
그래서 나머지 9명을 선수에 감금하고 일본하관에 입항할 때까지 밥을 주지 않았더니 모두 허기져서 반항할 생각을 않더라고 민씨는 씩 웃었다.
『한국영해에 들어설 때 군산으로 배를 끌고 갈까 했지만 조련계의 거짓말에 속아 북송선을 타고 오는 재일교포들에게 북한실정을 폭고하기 위해 망명처를 일본으로 잡았던 것이 일이 잘못됐다』고 후회했다.
『결국 폐쇄된 북한에서 살았기 때문에 세계정세에 어두웠어요. 일본에만 가면 일본은 우리 편을 들어 줄줄만 믿었는데 알고 보니 일본은 양다리 걸치고 있더군요.』 일본망명의 실패를 씁쓸히 웃었다.
조국의 품에 안긴 지금의 심정은 어떠한가고 묻자 민씨는 모든게 처음 보는 것 뿐이라 했다. 시민들의 옷차림, 서울거리를 메운 차량의 홍수, 마음대로 말할 수 있는 자유분위기, 아직 전부 소화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형님(민충기씨)을 극적으로 만났을 때와 복강에서 재일교포들이 태극기를 들고 꿈에라도 외치고싶던 「김일성 타도」「대한민국 만세」를 외칠 때, 김포공항에서 내 땅을 밟았을 때 다시 태어나는 기쁨을 느꼈고 평생 유한 없는 생애가 시작됨을 제 눈으로 똑똑히 봤다』고 했다. 민씨는 한마디로 『나는 직장도 예약되어있어 행복하지만 단지 고향의 부모형제가 걱정』이라고 북녘하늘을 쳐다봤다.<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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