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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오년의 회고(정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대의제의 정상화>
지난 한해 국내정치는 여타 영역의 의욕적인 근대화의 바람에도 불구하고 의구하게 전근대적인 상황 속에서 방황한 느낌이 짙다. 한국의 국제정치관계에 증대한 노화를 가져온 65년의 한·일관계안결로 정치적인 격동을 겪고 난 후 금년도 한국의 의회정치는 간신히 정상화에의 노력을 기울여 왔다고 하지만, 그 격동이 자아낸 상처는 아직도 완전히 그것이 아물었다고는 볼 수 없고, 따라서 의회가 과연 정치의 중심무대를 차지하고 있었던가에 대해서도 의문이 없지 않다.
우리사회의 대의제를 공고히 하기 위해서는 정당과 의회가 대중사회의 저변과 밀착해 있고 국민적인 신임을 얻어야 한다. 그러나 지난 한해동안의 이 나라의 강회정치를 이 각도에서 반성해 본다면 다음과 같은 결론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된다.
첫째로 우리 국회는 국민의 존경과 신임을 받기는 커녕, 불신과 멸시의 대상이 되어 있다는 점을 유감스럽지만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행정부가 국회의 권위를 그 본래의 수준에서 존중해 주지 앉은 탓이라고도 할 것이지만, 그보다도 국회가 정쟁에 골몰하고 또한 국회의원이 그 맡은바 소임완수보다는 이권찾기에 혈안이 되는 예가 비일비재였다는데 보다 큰 원인이 있을 것 같다.
국민은 의정단상에서는 이념과 정책을 내세우고 정의를 외치는 국회의원이 기실 이권참여에 급급하고 있음을 보게되는 까닭으로 국회를 불신하게 되는 듯하다. 우리 국회는 대를 거듭할수록 국회의원의 자질이 저하되고 있다는 논의도 있다. 만약에 이것이 사실이라면 국회의원은 국민의 「보다 좋은 부분」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나쁜 부분」을 대표하게 될 가능성도 없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국민적 입장에서 반성해야할 점은 홀륭하지 못한 대표를 도우면 결국 골탕을 먹는 것은 국민자신이라는 점을 절실히 의식하고 정치와 정치가, 그리고 정치집단을 불신하기에 앞서 고도의 정치적인 관심을 가지고 보다 좋은 대표를 뽑고 또 그들이 국사에 전념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추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내년은 마침 총선의 해이므로 각 당마다 인격·식견·자질에 있어서 훌륭한 인물을 공천하는데 주력해야 할 것은 물룬, 유권대중은 성실하고 유능한 인재를 선출하는데 각별한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정당의 근대화>
둘째로 정당자체의 근대화운동이 심히 지지부진하다는 것이다. 보수세력이 여·야로 갈라져 있다는 것은 일층 수긍이 간다고 하더라도 이른바 야당진영이 사분오열되어 사사건건 상호질시만을 되풀이하여 왔다든가, 또는 각 당마다 여러 파벌로 산산조각이나 명분없는 싸움만을 일삼고 있다는 사실 등은 아직도 우리사회의 정당이 전근대적 붕당적 성격을 탈피하지 뭇하고 있다는 산 증거라고 볼 수 있다.
정당이란 정권투쟁의 조직이며 그 정권투쟁은 정책대결로 결정짓는 것을 이상으로 한다. 이와 같은 이상에 비추어 볼 때 우리사회에 현존하는 정당은 정책상의 건의와 그 적시공급에 너무도 소홀하다 하지 않을 수 없고, 따라서 극언한다면 이 나라 정당의 정권투쟁은 그 거의 전부가 권력을 확집하고 혹은 쟁탈하기 위한 싸움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에 정권투쟁은 있으되 국민은 부재한다는 매우 슬픈 상황이 노정되지 않을 수 없다.
앞으로 정치하는 사람이나 정치집단은 대체 누구를 위한 정치싸움이냐 하는 것부터 깊이 반성해 주기를 간곡히 바란다. 자유의식이 확립되지 못한 후진 사회에서 여·야의 관계란 보통 「일당반」의 테두리를 벗어날 수 없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경우는 야당진영의 심한 내분과 분열로 인해서 「일당령」과도 같은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오늘날 야당인사들이 깊이 반성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앞으로 야당은 반드시 대동하여 통합하는 길을 대담하게 모색해야 할 것이다.
한편 집권당은 야당부재상황 같은 지나친 자기비만이 결국은 쾌정적인 자가분열의 화근이 된다는 것을 똑바로 인식하고 분열시켜서 통치한다는 식의 저차원의 사고방식을 깨끗이 청산토록 해야할 것이다.

<사회정의의 구현>
셋째로는 정계와 관계에서 부정·부패사건이 속출하고 있다는데 대하여 통탄을 금할 수가 없다. 지난 한해에도 조직적이고 지능적인 부정·부패사전이 속출하여 뜻 있는 국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였다. 국민의 감시의 눈초리가 무섭게 빛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정·부패가 속출되고 있는가 위정자들은 깊이 반성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정치가 있는 곳, 그리고 이권이 있는 곳에는 부정·부패가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는 것은 고금동서를 막론한 원칙이지만, 우리사회처럼 부정·부패가 심한 사회는 극히 드물었다는 것을 솔직히 시인하는데 주저해서는 안 된다.
부정·부패란 그 사실 자체보다도 부정·부패가 어둠 속에 매장되고 나중에는 부정·부패를 부정·부패로 생각지도 않는 사회적 기풍이 조성되는 것이 더 무서운 것이다. 우리는 부정·부패의 발생을 겁내지 않지만 부정·부패가 암매장되는 것을 심히 두려워한다. 왜냐 하면 부정·부패의 암매장과 부정·부패에 대한 묵인은 국민의 정의감을 마비시키고 우둔케 하기 때문이며 국민의 도덕성이 마비된 사회에 있어서는 모든 것이 올바르게 건설될 이가 없기 때문이다.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 할 것 없이 부정·부패를 조기에 적발함으로써 보다 더 큰 부정·부패의 발생을 예방하는데 주력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대소공무원의 기강을 확립하여 국민의 신임을 받고 국민에게 봉사하는 정권이 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부정·부패 없는 사회의 구현, 이것이 민주정치의 영원한 이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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