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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협 또 뚫렸나” … 고객들 2시간 거래 못해 발동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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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오후 서울 중구 태평로 신한은행 본점 영업부 전광판에 자동화기기와 인터넷뱅킹 등의 업무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안성식 기자]

20일 오후 3시 서울 태평로 신한은행 본점. 경찰들이 오가는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직원들이 고객 10여 명에게 “금방 복구가 되니 기다려주세요”라며 연신 고개를 숙였다. 만기 적금을 찾으러 왔다는 최성환(57)씨는 “급하게 돈 쓸 데가 있는데 벌써 30분째 기다리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직장인 송모(28)씨는 “인터넷뱅킹으로 거래처 송금이 안 돼 뛰어왔는데 여기도 안 된다니 어쩌면 좋으냐”며 발을 동동 굴렀다.

 오후 4시 서울 충정로 농협은행 본점의 현금입출금기(ATM) 앞에는 돈을 뽑으려는 사람들이 길게 줄 서 있었다. 하지만 ATM기 화면엔 ‘온라인 준비 중’이란 자막만 나왔다. 아현동에 사는 김모(65)씨는 “몇 년 전에도 크게 당하더니 또 뚫린 거냐. 이래서야 어떻게 믿고 거래를 하겠느냐”며 짜증을 냈다.

 전산망 마비 사태는 금융권도 강타했다. 이날 오후 2시쯤부터 농협은행·농협생보·농협손보·신한은행·제주은행 등 5개 금융사에서 전산시스템이 장애를 일으켰다. 우리은행도 디도스(DDoS)로 추정되는 공격이 있었지만 내부 시스템으로 방어했다고 밝혔다.

 신한은행은 이날 오후 2시14분부터 예금·대출 등 모든 창구 거래와 ATM기, 인터넷·모바일뱅킹이 마비됐다. 국내와 해외 사이의 송금도 중지됐다. 신한카드 고객센터에는 체크카드 결제가 안 된다는 고객 항의 전화가 폭주했다. 서춘석 신한은행 IT개발본부장은 “악성코드로 추정되는 ‘프로그램 삭제(Delete)’ 명령어가 본부 전산센터와 10여 대의 PC 등 두 경로를 통해 들어와 전산 시스템이 마비됐다”고 설명했다. 악성코드가 고객 계좌 원장을 관리하는 프로그램을 지워 데이터를 읽지 못하는 상황이 됐다는 것이다. 서 본부장은 “워드 프로그램이 지워져 문서파일을 읽지 못하게 된 것과 같다”며 “원장 훼손과 정보 유출은 없었다”고 말했다. 신한은행은 오후 4시에 시스템을 복구하고 정확한 원인을 찾고 있다. 신한금융지주 계열사인 제주은행도 오후 2시15분 인터넷뱅킹을 제외한 창구 거래와 ATM기 작동이 마비됐다.

 금융사 전산망이 외부 공격을 받아 마비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1년 4월 농협 전산망이 북한 소행으로 추정되는 해킹 공격을 받아 전면 마비됐다. 당시 사흘 이상 창구와 ATM 거래, 인터넷뱅킹 등이 마비돼 고객들이 극심한 불편을 겪었다. 농협은 이후 대대적인 전산투자와 해킹 방지 대책을 약속했지만 이번 일로 ‘공염불’이었음이 드러났다.

 이날 오후 2시15분 농협은행·농협생보·농협손보 등 3개 금융계열사 전산 시스템이 일제히 장애를 일으켰다. 직원들이 쓰던 PC가 갑자기 작동을 멈추고 재부팅도 되지 않았다. 서버까지 피해를 볼 것을 염려한 회사 측은 본점 내 모든 PC의 랜선을 뽑아 피해 확산을 막았다. 그러나 일부 영업점 단말기에서도 같은 증상이 잇따라 나타나자 한 시간 뒤인 오후 3시15분 영업점 PC의 전산 연결을 모두 끊도록 지시했다. 이에 따라 창구·ATM이 대부분 마비되고 인터넷·모바일뱅킹만 정상적으로 이뤄졌다. 농협 측은 오후 3시45분 일부 단말기를 다시 켜기 시작해 오후 4시20분 모든 거래를 정상화했다. 신한은행과 농협은 이날 오후 6시까지 영업시간을 연장했다. 카드 결제나 자동이체 등 마감 뒤 자동적으로 이뤄지는 거래도 이상이 없었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농협손보·농협생보에서도 이날 총 90여 대의 임직원 PC가 다운됐다.

 다행히 금융사 간 거래와 결제가 이뤄지는 금융 기간 전산망에는 피해가 없었다. 한국은행 금융결제망과 증권·외환전산망은 정상 가동됐다. 금융위는 이날 위기상황대응반을 구성하고 금융전산 위기경보 수준을 ‘관심’에서 ‘주의’로 올렸다. 금융감독원은 “신한은행·농협은행에 IT검사 직원을 투입해 사고 원인을 빠르게 파악하고 복구조치를 점검하겠다”고 말했다.

글=이태경·홍상지 기자
사진=안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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