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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경남 의령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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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경남일대에서 산수 좋고. 인물 많이 나는 고장이라면 예부터 의령 땅을 손꼽아왔다.
군의 동북쪽 경계에는 낙동강이 끼고 돌며 남쪽에는 남강이 흘려 수운이 편하고 비옥한 평야가 전개되고 있다. 동으로는 창령, 서로는 합천·산청, 남으로는 진양·함안 등과 경계하고 있다.
동국여지승람을 보면 이조 초의 문장가 하연이 이 고장을 「창강대야· 고강무임」이라 했고 대종·세종 때의 시인 어학갑은 「음수정암 횡련벽 추풍저민 전병신」이라 읊었다.
산천풍광이 장엄하면서도 아름다운 이 고장에는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문무관이 많이 나오고 미인이 많다.
임난에 의병을 일으켜 큰공을 세운 홍의 장군 망애당 곽재우가 났고 생육신의 한사람인 추강 남효온의 유적인 학가정이 칠곡면 도산리 휘어진 노송 뒤에 정숙하게 서 있으며 병자호란을 피해 유사들이 노거하던 의령정(대의면중촌리)을 비롯 많은 회원과 정자, 전적이 깔려있다.
일찍 개화의 바람이 분 의령은 이밖에도 교수·법관·고급관리·회사중역 등 중견인사와 세칭 출세한 사람들이 경남 어느 고장에 비해 많이 났다. 반면 옛 유림들이 아직도 건재하여 경로사상 또한 철저한 곳이다.
해발 897「미터」의 저굴산은 신라 때 보제사, 양천사 등 10여 대찰에 수십의 암자가 있었으며 (여승) 승려만도 2천여명이 있었다고 전해온다.
홍의장군이 수련한 곳이 바로 저굴산이며 산 일대에 묻힌 불적은 1천 여점이 넘을 것으로 추측된다고 이 지방사람들은 하고있다.
『남강물 감도는 곳 정암나루에 의병장 망우당의 충절 어린 내 고장…
저굴산 영봉에는 서기가 돌고
벽화산 옛성터에 정기어린 내 고장…』
새로 지은 군가가 젊은이들 사이에 불리면서부터 『산 좋고 물 맑은 한지의 명산지』 의령은 논밭농사가 주였던 전래의 모습을 조용히 바꾸어 가고 있다.
해마다 여름 홍수 때문에 피해가 컸던 남강변 마을들은 제방을 쌓아 작년부터는 이모작을 시작했고 상류에서 서두르고있는 남강「댐」이 준공되면 이곳의 강물은 평균수위가 2「미터」낮아져 홍수의 위협을 받지 않게 된다.
한지만의 명산지에서 앞으로는 한지·잠업·마늘의 명산지로 새 모습을 보이기 위해 착실한 계획을 추진시키고 있다.
▲한지=장판지와 창호지 등 전국 한지 생산량의 반을 차지하고 있으면서도 수공업적 경영규모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의령 한지는 전기를 도입, 시설을 근대화하고 경영을 합리화 시키게되면 수공업규모는 새해부터 농가부업으로 돌리려 하고있다.
수봉 부림 두면의 4백여 가구가 경남한지공업협동조합을 구성, 현재 연간 장판지 4백70만장 창호지 6백만장 특수지 8백30만장을 생산, 1억4천4백만원의 소득을 올림으로써 가구당 35만원의 소득을 얻고있다.
▲잠업주산지=66년 현재 4천2백가구가 누에고치 4만6천「킬로」를 생산, 가구당 4천여원의 소득을 올리고 있으나 8년 뒤에는 가구당 4만4천여원의 소득을 올릴 계획-.
이밖에 상포 마늘, 밤나무 밭 조성, 상피 수집 등 의욕에 찬 군 당국의 계획이 이루어지면 71년부터 74년께에는 의령의 농속은 탈바꿈을 하게 될 것이다. <송평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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