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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제주 가시나니|곡 범부·합정설 선생 서정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하늘 밑에서는 제일로 밝던 머리.
쫓기어 헤매다가 말도 없이 가는 머리.
학비 없어 퇴학 맞아 서성이다 운명하는
소학교 일등 생의 인 관을 보는 듯 설습니다.
선생님!
한밤 중 들으시던 땅속의 부엉이 울음
인제는 그만 우리에게 다 맡기시고,
하늘에선 노자 없이도 댕기시리니
그다 말못하시고 간 강의
날마다 하시러 내려오시옵소서.
열아홉살 때 태종 무열왕릉에서 품에 끄리셨던 칠수,
그때 마련하셨던 신라의 제사 그릇들,
거기 담으시던 능 앞 호수의 말 풀 나물,
거기 이월 능 앞의 산수유 향기,
인제는 두루 우리에게 맡기시고
신라의 대제주이시여 마음놓으시고 하늘에 드시옵소서.
옛날 사천왕사 앞길에서 월명이 밤에 불던 피리.
선생님이 이어 받아 부시던 피리.
인제는 그것도 우리에게 주옵소서
거기 선생님의 뜻을 받아 담아
길이 불고 따라 가오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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