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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와 정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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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증기 기관이 영국에서는 기계를 돌리는데 이용되어 산업 혁명을 촉구했다면, 미국에서는 바퀴를 돌리는데 활용되어 서부 개척을 촉구하였다. 그런데 저절로 나있는 하천에는 기선을 띄우면 그만이지만, 궤도를 놓는 철도는 처음부터 말썽거리였다. 힘든 기술과 큰 자본이 드는 대륙 횡단 철도를 부설하겠다고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는 것은 정부가 도움을 주면 그만이었다. 더 큰 문제는 노선의 위치. 민주당은 남부를 거쳐서 서부로 가는 철도를 우겼고, 공화당은 북부에서 바로 중서부를 통하여 태평양에 이르는 길을 주장했던 것이다.
해결은 실력이 가져왔다. 남북 전쟁에서 기진 맥진한 남부가 이를 갈면서 좌시 하는 가운데 공화당 정부는 북부에서 바로 서부로 뻗는 대규모의 철도 공사를 시작하였다. 융자는 물론, 연선의 공유지까지 그냥 나누어주고 7만5천명의 중국인 이민의 피땀까지 제공하였다. 이리하여 19세기말까지에는 다섯개의 횡단 철도가 완성되어 개척민과 물자의 물결이 대륙을 누비게 되었다.
그중 남부와 연결되는 노선은 단 하나뿐. 정착자에게 거의 공짜로 공유지를 나눠준 택지법의 힘도 곁들여 중서부와 서부는 공화당 세력의 아성이 되고 말았다. 남부가 두고두고 연방 정부와 공화당을 미워하는 큰 원인의 하나가 여기에도 있다. 긴 눈으로 보면 공화당도 골치가 아프다. 남부의 뒤늦은 발전이 아직까지도 말썽이기 때문이다.
폐단은 있어도 철도에 정치의 입김이 쐬는 방도가 그나마 미국에서는 거창하다. 우리 나라에서는 어떤가. 일본의 못된 버릇을 흉내내어 힘깨나 쓴다는 일부 국회의원들이 자기 선거구에 특급 열차를 마구 세우는가 했더니, 이번에는 내년도 예산을 갉아내어 선거구에서 기공식만 올리는 철도 부설비를 뜯어갔다 한다. 선거 때 유권자의 구미만 돋우고 마는 째째한 계획인 모양이다.
정치 철도를 피할 수 없다면 좀더 실속이 있고 규모나 컸으면 오죽이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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