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Sunday] 많은 걸 했지만 하나도 하지 않은 …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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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4호 35면

“마지막 부탁인데 그 녀석들이 저희 집 도어키 번호를 알고 있어요. 번호 좀 바꿔주세요. 저는 먼저 가서 100년이든 1000년이든 저희 가족 기다릴게요.” 2011년 12월 대구. 학교폭력을 참다 못한 중학생이 베란다에서 몸을 던졌다. 여론이 들끓자 정부는 이듬해 2월 종합예방대책을 발표, 교내 CCTV의 수를 늘리고 학교폭력 실태조사를 하게 했다. 그로부터 1년 남짓한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또 한 명의 학생이 생을 등졌다.

 이번 최모군의 자살은 정부의 대책이 무용지물이었음을 보여준다. 설치된 학교 내 CCTV는 96.8%가 사람을 식별하기 어려운 50만 화소 미만이었고, 학교폭력 실태 조사는 최군과 한 집에서 살던 가해 학생을 밝혀내지 못했다. 해당 교육청의 해명은 더 기가 찬다. 지난해 8월 학교폭력실태조사에서 최군의 중학교 학생 47명이 ‘학교폭력을 당한 적이 있다’고 답했지만 교육청은 당시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경북 교육청은 “전국 학생 중 평균 10%가 피해를 봤다는 통계에 비춰 이 중학교는 7.6% 수준이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47명이 학교폭력에 시달렸지만 당국에선 책상에 앉아 숫자놀음만 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정부는 많은 걸 했지만 하나도 하지 않았다.

 뒤늦게 청와대에선 50만 화소의 CCTV를 100만 화소로 교체하겠다고 ‘뒷북 행정’에 나섰다. 뒷북이라도 제대로 치면 좋으련만 해결책이 CCTV 확충과 성능 보완에만 초점이 맞춰지는 듯하다. 학교 안을 100% 감시한다 한들 학교 밖 폭력을 막을 수 있을까. 또 CCTV의 사각지대를 현실적으로 다 없앨 수 있을까. 늘어난 CCTV가 학교폭력을 줄여준다는 보장도 없다. 전국의 공공기관 CCTV는 2008년 15만7245대에서 2011년에는 36만4302대로 두 배 이상 늘고 민간 부문까지 합하면 그 수가 300만 대가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5대 범죄(살인·강도·강간·절도·폭력)는 2007년 54만4527건에서 2011년 61만7910건으로 오히려 늘었다. 검거율은 74.8%에서 62.1%로 더 감소했다.

 CCTV가 학교폭력을 피할 수 있는 공간을 잠시나마 제공해줄지 모른다. 그러나 너무 행정편의적인 사고가 아닌지 우려스럽다는 것이다. 학교폭력을 줄이기 위한 근본적인 노력은 방치한 채 CCTV 설치로 이 노력을 대신하려 하는 것은 아닌지, 보여주기에만 급급한 건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공공장소에 CCTV를 설치해 치안을 관리하는 행위는 국가가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는 대신 그 책임을 소위 ‘불량’ 시민에게 전가”하는 것이라고 한 프랑스 사회학자 로익 바캉의 말을 되새겨 봐야 한다.

 우리는 숫자놀음의 대가를 또 한번 크게 치렀다. 이제는 도돌이표를 지워야 한다. CCTV의 사각지대가 아닌 교육과 애정을 통한 관심의 사각지대를 없앨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할 때다. 많은 걸 했지만 하나도 하지 않은 정부, 이젠 ‘진짜’ 무언가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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