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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권근영의 그림 속 얼굴

폴리베르제르의 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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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권근영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혼자 봐야 할 것 같은 그림이다. 혼자 서서 그림 속 여자와 마주해야 할 것 같다. 가슴이 깊이 파인 검은 드레스 차림의 여인, 그녀가 등지고 있는 배경은 이곳이 어디이며 그녀가 어떤 처지인지를 보여준다. 그녀는 파리의 핵심 유흥 공간, 폴리베르제르의 여급이다. 1869년 문을 연 이곳은 파리의 버라이어티 쇼 극장으로 지금도 성업 중이다. 19세기 말부터 시민들은 여기서 식사하고 담소를 나누며 단막극과 곡예도 볼 수 있었다.

그림 왼쪽 위에 공중그네 곡예사의 다리가 보인다. 흐리게 보이는 배경 속 사람들은 이 공연을 보고 있다. 경쾌한 붓질 속 희미한 이미지에 사람들의 들뜬 분위기가 전해진다. 공연이든, 음악이든, 술이든 모두가 취해 들뜬 이곳에서 여급만이 혼자 착 가라앉아 있다. 팔아야 할 술·과일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신세, 그녀는 몹시 외롭다.

에두아르 마네, 폴리베르제르의 바, 1882, 캔버스에 유채, 96×130㎝. 런던 코톨드 인스티튜트 갤러리 소장.

 오른쪽엔 여급의 뒷모습이 있다. 그러니 그녀는 거울을 등지고 섰으며, 우리가 보는 흥성거림을 그 또한 응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 거울 속 이미지는 다소 왜곡돼 있다. 여급의 왼쪽에 있었을 화가는 주인공의 뒷모습이 잘 보이도록 거울 속 반영을 좀 더 오른쪽으로 옮겼다. 정면을 응시하는 실제 모습과 달리 거울 속 여급은 몸을 앞으로 숙이고 손님을 응대하고 있다. 중절모 쓴 손님, 화가, 그리고 우리는 모두 그녀의 왼쪽에 있는 셈이다.

 인상파의 아버지 에두아르 마네(1832∼83)의 만년 대작 ‘폴리베르제르의 바’(1882)다. 법조인 집안 장남으로 태어난 마네는 새로운 방식으로 그려 주류 미술계의 인정을 받고 싶은 마음으로 똘똘 뭉친 화가였다. 화가로 산 23년 동안 20번이나 살롱전에 출품했고, 여섯 번 낙선했으며, 출품작이 호평을 받은 것은 세 번 정도에 불과했다. 파격적 주제와 기법으로 화단의 비난을 받으면서도 끊임없이 살롱전 문을 두드렸다. 인상파 후배들의 좌장이었지만 그는 화가가 대중과 만나는 자리는 살롱전이어야 한다고 믿고 인상파전에 참여하기를 거부했다.

 죽기 1년 전에 그려 살롱전에 내건 이 그림엔 마네가 평생 몰두해 온 모든 것이 들어 있다. 근대 도시의 여가생활과 볼거리에 대한 찬양, 스치는 듯한 붓질로 묘사한 찰나. 화가는 맨 왼쪽 술병 라벨에 ‘마네, 1882’라는 서명을 남겼다. 그는 여급과 마주한 손님처럼 관찰자였고, 여급처럼 군중 속에서 겉돌았으며, 진열대에 내놓은 술병처럼 자신을 팔아야 하는 예술가였다. 런던 로열 아카데미에서 그의 회고전 ‘마네: 삶을 그리다’가 열리고 있다.

권근영 문화스포츠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