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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音이 널린 세상이지만 그래도 음악에 목마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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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차르트 팬을 자처하는 영국의 찰스 왕세자가 그런 말을 했다. 1991년 잉글리시 챔버 오케스트라를 초청해 가진 모차르트 2백주기 버킹엄궁 콘서트에서 행한 짧은 스피치에서였다.

자기네 선조 조지 3세 왕이 1764년 같은 홀에서 여덟살 모차르트를 불러 피아노 연주를 부탁했었다는 것이고, 그 때 연주료가 24기니였다는 것이다.

연주회 녹화 테이프에 담긴 왕세자 말로는 24기니란 2백년 뒤 영국 왕실이 오케스트라에 주는 연주료 전체보다 큰 액수였다고 한다.

그렇다면 음악에 관한 한 요즘 사람들은 왕후장상 부러울 게 없다. 티켓을 구입해 콘서트에 가거나, CD나 DVD를 통해 무한정 음악을 들을 수 있으니 말이다.

문제는 그 좋은 음악이 유독 출판물로는 가뭄에 콩 나듯 한다. 당장 미술 분야와 비교해봐도 심한 불균형을 보인다.

이번 주 '행복한 책읽기'지면에서도 확인되지만, 미술.미술사 책은 쏟아져도 음악은 책 자체가 드물다. 이게 영 별난 일인 게 시장 규모 면에서는 음악이 압도적으로 크기 때문이다.

최병식의 '미술 시장과 경영'(동문선, 2001)과 문화부 문화산업 백서 등을 종합해 볼라치면, 미술품의 연 매출액(화랑가 거래액수)은 5백억원을 밑돈다. 음반 매출액.콘서트 입장료를 합친 음악 시장은 10배 규모인 5천억원 시장이다.

어쨌거나 그런 형편에서 최근 선보인 필립 솔레르스의 '모차르트 평전', 이순열의 '뜰에는 나무를 가슴에는 음악을' 두 권의 등장은 반갑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중 예전 '음악동아'를 꾸렸던 평론가 이순열(68)의 경우 알아주는 '황금 귀'인데다 문장 역시 좋다. 10년 전 그가 쓴 '음악, 귀로 마시는 그 황홀한 술'보다 밀도가 좀 떨어지지만, 음악에 대한 안목과 열정만은 여전하다.

그런 그인지라 연주자별 호오(好惡)도 거의 칼날이다. 이를테면 사람들이 '전설'로 아는 지휘자 헤르베르트 카라얀에게 최악의 혹평을 퍼붓는다. "화음 구축에만 민감한 음향기사"라는 지적이다. "지휘자라기보다는 곡마단원"이라고 규정하기도 한다.

알고 보면 그런 독설은 음악을 듣는 이들 사이의 상식이다. 세상의 뜬 이름과 역량은 따로 놀기도 하는데, 카라얀이 그런 대표적인 케이스다.

그런 저자인지라 그는 파우스트적 지휘자로 분류한 빌헬름 푸르트벵글러를 유독 그리워한다. 까마득한 높이로 쌓아올리는 음악적 긴장, 그리고 그것을 일순 허물어버리는 구도자 세르규 첼리비다케의 지휘 스타일에도 공감을 한다. 바이올리니스트들도 그렇다.

안네 소피 무터 등 허깨비 스타는 아예 언급도 되지 않는다. 세상에는 '눌변(訥辯)의 음악'이라는 게 존재하고, 그것이 갖는 각별한 호소력을 보여주는 요셉 시게티를 높게 친다.

정갈한 격조의 다비드 오이스트라흐, '불륜의 냄새'마저 풍기는 고혹적 분위기의 자크 티보 등 바이올리니스트들도 그렇지만, 그가 선호하는 연주자들은 상당수 이름조차 낯설다.

다닐 샤프란.폴 토틀리에(첼리스트) 로잘린 투렉.유라 귤라(피아니스트) 엘리자베스 슈바르츠코프. 엠마 커크비(소프라노) 등이 그들이다.

짐작했겠지만 이들은 SP시절을 포함한 왕년의 연주자들이다. 저자의 호고(好古) 취향도 작용한 결과이겠지만, 기자가 알기에도 좋았던 시절의 음악은 갔다. 재즈도 1950년대 후반까지 비밥을 최고로 치듯, 클래식도 마찬가지다. 요즘 음악은 겉만 번지르르할 뿐 공허하다.

그러고 보면 서구의 경우 클래식은 '노인 음악'으로 추락한 지 꽤 됐다. 보편적 교양의 자리에서도 일단 내려선 형국이다. 너나할 것 없이 천박해진 요즘 음악이란 이제 몇몇 호사가들 사이의 매니어적 취미로 겨우 존재하는 것일까.

곤혹스럽지만, 그게 사실인데, 그래도 역시 음악은 음악이 아닌가 싶다.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 그토록 아름답게 울려퍼지던 모차르트를 한번 떠올려보라.

구원없는 감옥을 일순 자유와 행복의 공간으로 바꿔놓던 '피가로의 결혼' 중 아리아 '달콤한 산들바람'의 아름다움이라니…. '모차르트 평전'을 옮긴이의 말대로 요즘 시대 음악은 너무 흔하다.

전화 통화 대기음으로, 엘리베이터 안에서 그저 일상적으로 들려온다. 글쎄다. 공기처럼 너무도 깊숙이 스며 있기 때문에 음악이 외려 본래의 제 값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조우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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