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 찾은 헤이글 독설로 맞은 카르자이 “탈레반 테러 미국 공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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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 철수를 모양 좋게 마무리하려던 미국의 계획이 갈수록 꼬이고 있다. 이번엔 하미드 카르자이 아프간 대통령이 탈레반의 폭탄 테러가 미국과 공모한 것이라고 비난하고 나섰다. 그것도 척 헤이글 미 국방장관이 취임 후 첫 방문한 와중에 퍼부은 독설이다.

 카르자이 대통령은 10일(현지시간) TV 연설에서 전날 19명의 희생자를 낸 두 차례의 탈레반 폭탄 테러 책임을 미국에 돌렸다. 탈레반의 이름으로 행해진 것이지만 “실제론 미군 입장을 돕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탈레반은 2014년 이후 외국군이 철수하면 유혈사태가 더 늘어날 거라고 겁주고 있다. 이런 식으로 미군 주둔을 연장하려는 미국을 돕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카르자이는 그 근거로 미국이 탈레반과 이면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카르자이는 헤이글 장관과의 공동기자회견마저 ‘보안상의 우려’를 내세우며 일방적으로 취소했다.

 전날 카불 시내 국방부 청사 앞과 동부 코스트주에선 탈레반이 자살폭탄 테러를 벌여 민간인 등 19명이 숨졌다. 미국은 물론 탈레반도 대변인을 통해 폭탄 테러에 미국 개입은 없었다고 카르자이 발언을 부인했다.

 카르자이의 미국 불신은 뿌리 깊다. 최근엔 탈레반 반군이 수용된 바그람 교도소 관할권을 미군에서 넘겨받기로 했다가 취소되면서 대통령 권위에 상처를 입었다. 그는 종종 “서방 관료와 미디어는 2014년 이후 아프간 전망을 일부러 부정적으로 재생산하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2009년 재선에 성공한 그는 2014년 4월 선거에서도 권력 유지를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난처해진 헤이글 장관은 이날 오후 카르자이 대통령과 비공개 회담을 하고 수습에 나섰다. 회담 후 그는 “미국이 일방적으로 탈레반과 협력하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고 했다. 그는 “나도 정치인 출신이다. 국가 지도자들에게 이런 어려움은 늘 있다”면서 진화에 애썼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지난달 국정연설에서 아프간에 주둔 중인 약 6만6000명의 미군을 2014년 말까지 철군시킨다는 계획을 밝혔다.

  강혜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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