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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미 평화봉사단원 수기|존· 윌리엄· 켈러 평택 종합고등학교 근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미평화봉사단 (피스·코) 이 한국에 건너온지 벌써 2개월이 가까와온다. 현재 97명의 단원들이 전국 45개도시의 고등학교 및 대학교에서 9월말부터 근무하고 있는데 이들은 한국인교사들과 똑같은 대우를 받으며 생활하고있다. 한국에 오기전 「하와이」에서 12주간의 특별교육 및 훈련을 받았지만 그래도 한국인과 똑같은 생활을 꾸려나가기란 쉬운일은 아닌듯-. 이들은 매일 도시락을 들고 다니며 김치·깍두기를 먹고 젓가락질을 하며 온돌방에서 하숙하고있다. 그중에는 31명의 여자단원들도 끼어있다. 「평화봉사단정신」 아래 낮선 한국에서 지내고있는 그들의 생활을 살펴보기로한다.<외신부>

<온돌에서 침대없이>
내가 한국에온지 이제 2개월이 가까와 오기때문에 어느정도 생활에 익숙해져서 처음보다는 훨씬 불편한점이 적어졌다. 지금 월4천원짜리 하숙방에서 한국생활방식 그대로 살고있다. 전형적인 한식 온돌방에서 침대없이 지내고 있으며 김치·깍두기를 즐겨먹고 젓가락을 쓸줄알게도됐다.
한국인교사들과 똑같이 1만2천원의 월급을 받아 맥주나 고급술은 못마시고 홍차를 즐겨마시는 정도다. 다행히 도시 아닌 군소재지에있는 평택고등학교에 배치되었기 때문에 한국농촌생활의 여러면을 볼수있게되었다. 처음엔 모든것이 낯선것들이어서 불편하기 이를데 없었다. 수세식변소가 없다는것은 문제가 되지않았지만 매운 김치에 혼이났다.

<다방에가 홍차들고>
지금은 김치·깍두기를 맛있게 먹지만 처음에 와서 매운김치를 마구 먹다가 설사가 나서 8일간 장기결석까지했다. 덕택에 처음 한국에 도착했을때 상당히 뚱뚱했던 몸이 날씬해져 기쁘다. 처음 몇주간은 1주일에 두서너번씩 고향꿈을 꾸었지만 이젠 차차 학생들과 정도들고 한국어를 공부하는등 너무 할일이 많아서 고독을 느낄여유가 없다.
그러나 아직도 언어의 장벽때문에 많은 친구가 없어 상당히 외롭기는하다. 평택 장날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시장에 나가 사람들이 떠들어대는 이야기를 들어 말을 귀에 익히는중이다. 다방에도 자주나가 홍차를 한잔마시고 옆사람들이 이야기하는것을 들어보기도 한다. 빨리 내가 한국말을 익혀야 학생들에게 좀더 나은 강의를 할수있기 때문이다.

<전형적 한인되고파>
나는 미어회화를 가르치고있는데 학생들에게 하루전 문답용 문장을 미리 써주고, 학생들로 하여금 미리 공부하여 강의시간에 두패로 나누어 서로 묻고 대답하도록 하고있다. 발음도 고쳐주고 문장도 외워서 생활에 필요한 회화를 가르치기 위해서이다. 68년까지 한국에 있으면서 많이 일을 해보고 싶다. 전형적인 한국인이 되어 보겠다는것이 나의 소신이다. 그래서 매일 도시락을 꼭 싸가지고 다닌다.
지금까지 평택생화에서 가장 흥미있는 구경거리는 지난 추석날에 열렸던 씨름대회이었다. 처음보는것이었기에 인상에 남는다. 평택종합고등학교학생들의 배우겠다는 욕망에 감명을 받았으며 학생들이 퍽 친절하다는것을 느꼇다. 또 여기 주민들이 많이 협조해주어서 나는 퍽 순조로운 나날을 보내고있다. 내가 「피스·코」 (평화봉사단)에 가입하겠다고 결심한것은 4년전 봉사단이 창설될때었다.
고 「케네디」 대통령이 주창한 「정신과 도전」에 감명되어 대학교를 졸업하면 곧 입단할 결심을 했다. 봉사하는 정신을 받들어 나가면 세계 어느 나라든지간에 그 나라 고유한 「피스·코」가 생길것이라고보며 이것이 나의 희망이기도하다.
2년이 지나면 「아프리카」 에 가볼 예정이지만 한국에 있는동안 열심히 많이 배우려 한다. <평택=손석주>
「겔러」씨 약력=미주「오하이오」 출신·「데포」 대학졸업· 정치학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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