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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남의 나라 이야기이지만 몇 달 전에 미국 대통령의 따님이 결혼한다고 우리 나라 신문에서도 굉장히 떠들썩하게 보도되었다. 그때 신문기사를 보고 놀란 것은 나뿐이 아니었을 것이다. 과문한 탓이기는 하나 서양사람들의 결혼식은 엄숙하면서도 간소한 것인 줄로만 알고 있던 사람에게는 뜻밖의 일이었다.
옛날 중국의 명나라에서도 황태자의 결혼식에 쓴 비용이 중앙정부의 1년 동안의 수입보다도 많은 일이 있었다고 하지만, 근대 민주주의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에서 평민의 결혼식에 비하여 그처럼 규모가 크고 요란한 결혼식도 있었다는 것을 미리 몰랐었다.
내가 놀란 것은 그 일만이 아니었다. 우리 나라를 도와주고 우리와 친선관계에 있는 나라의 대통령의 집안 경사라고 하지만, 우리 나라의 언론기관이 그렇게까지 떠들어댈 까닭을 알 수 없었다. 모르기는 하지만 우리 나라 대통령의 집안에 경사가 있다고 하여도 그렇게 연일 대서특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와 같은 결혼식에 비할 바는 아니나, 우리 나라에서의 평민의 결혼식은 미국의 일반 결혼식에 비하면 그 경제생활의 정도에 비추어 보아, 그 보다 백배나 천배 호화로운 것일 성싶다. 적어도 수백명의 참석자의 귀중한 시간이 낭비된다.
요즈음은 날씨가 추워져서 한고비 넘은 것 같지만, 그래도 토요일이나 일요일이 되면 또 「길일」이라고 「택시」 운전사에게는 반가운 일이겠으나, 모이는 사람들이 참말로 축하하는 생각으로 참석하는지 의심스럽다. 더우기 사회적인 명사의 집안경사에 모여드는 수백명의 자가용차, 무슨 차의 운전사들이 밖에서 서성대는 모습은 보기에도 안타깝다. 명사의 청첩을 받은 준 명사들은 하루에도 몇 군데 식장을 순례하게 되니, 수건이나 비누는 돈주고 살 필요가 없어서 다행이라고 할까.
아무렇든 혼상을 간소화할 수 없겠는가 하는 생각은 서로가 다같이 하면서도 실천에 옮기지 못하니 딱한 노릇이다. 그런데 생활의 간소화의 선도가 되어야 할 문화계에도 「잔치」가 성행한다. 무슨 학술발표회, 무슨 토론회, 무슨 「심포지엄」이 그렇게 많은지. 그 많은 모임들이 문화의 발전의 「바로미터」가 된다고는 쉽게 믿어지지 않는다. 또 무슨 기념행사가 그렇게 많을까, 어느 대학인가는 기념행사로 교문의 치장에 수십만원을 쓸 돈은 있어도, 교수들의 연구실에 피우는 난로에 연통을 달아줄 수만원이 없는 모양이다. 연구의 뒷받침보다는 겉치장이 쉽단다. 체면이나 겉치장이 아니고, 실질이 아쉽다는 것은 일반사회에 있어서와 같이 문화계에 있어서도 절실히 느껴지는 일이다.
김해종(서울대 문리대 교수·동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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