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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 「유네스코」 20돌|그 발자취와 한국위원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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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4일은 「유네스코」 창립 20돌. 한국이 『국제이해와 국제협력을 증진한다』는 이 국제기구에 가입한지도 16년- 지난달 25일부터 「파리」에서 열리고 있는 제14차 총회에 김활란 박사를 수석으로 하는 대표단까지 파견하고 있다. 전쟁은 인간의 마음속에서부터 비롯되는 것이므로 평화수호의 방벽은 인간의 마음속에서부터 구축되어야 한다(유네스코헌장 서문)는 「유네스코」와 그 한국위원회의 발자취를 더듬어 본다.

<런던서 첫모임 44개국이 출발>
1945년 11월 전쟁의 상처가 채 아물지 않은 「런던」에서 「유네스코」를 만들기 위한 연합국 교육문화회의가 열렸고 각국 대표들은 역사에 남을 명 연설을 했다.
-『지금 무지와 편견, 그리고 오해의 군대에 대항하여 공통의 진실을 확립하는 기회가 여러분의 손에 달려있다』(「애틀리」 당시 영 수상), 『현대의 인간은 눈에 보이지 않는 원자로를 만들거나 파괴하는 힘을 믿으면서도 인간의 마음을 사랑하거나 창조하는 힘의 존재는 믿으려 들지 않는다』(미국 「아치볼트·마크레이슈」)라고-
이보다 앞서 42년부터 「런던」에서는 연합국 문교장관회의가 활동했고 그 연장으로 「런던」회의가 열렸던 것. 참가국은 44, 여기에서 「유네스코」헌장이 논의 결정되었다.

<각국 계획 달라 사업안 백50개>
그러나 「유네스코」에 관한 참가국의 생각이 처음부터 완전 일치된 것은 아니었다. 각국은 그들의 입장에서 「유네스코」에 여러 가지 사업을 기대했다. 제1회 총회에는 1백50가지의 잡다한 사업안이 제출되었고 그것은 ①교육·과학·문화의 수준향상 ②사상의 자유교류 ③국제이해교육 ④인간과 현대세계의 네 가지 순으로 대별되었다.
2년에 한번씩 열리는 총회를 갖는 동안 「유네스코」는 어떤 사업에 초점을 두느냐로 시행착오의 시대가 계속되었다.

<6·25 직전에 한국도 가입>
제2대 사무국장인 「하메이·도레스·보데」씨가 당시 고조되어 가는 미·소 냉전에 대해 적극적인 「유네스코」 사업을 통해 해결하라고 주장하여 예산의 증가를 겁내는 각국과 충돌까지 했다.
우리 나라가 가입한 것은 이 사건 이후인 1950년 6월14일, 6·25사변 발발 11일 전이었고 패전국 일본과 서독이 이듬해인 51년에 가입했다.
이때부터 사업중점화의 요망은 더욱 강해졌고 10년 전인 제9차 총회(뉴델리)에서 가까스로 결실을 보았다.
그것은 전 가맹국을 대상으로 하는 일선활동과 특수가맹국에 대한 기한부 특수활동으로 대별되었고 다시 이 두 사업을 긴급 최우선의 일에 인원과 자금을 집중시키자는 것이었다.
그 첫 번째 것이 57년부터 행해진 「라틴·아메리카」 초등교육확충계획(10년)과 「동서양 양 문화 가치상호이해계획」, 두 번째 것의 일환으로 한국에서는 3일부터 중앙일보사와 공동주최는 「인상파에서 현대까지」의 40명의 명화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아프리카 총회 별명 등 갖기도>
「유엔」처럼 「유네스코」에도 「아프리카」총회로 별명 붙은 시대가 있었으니 60년의 제11회, 2년 후의 12회 총회에는 29개 「아프리카」 신생국이 새로이 들어왔다. 구성국의 변화는 그 사업성격마저 바꿔 계획의 중점은 후진국교육 원조에 크게 기울어졌다.
「유네스코」는 이때부터 「라틴·아메리카」 「아시아」 「아랍」제국 및 「아메리카」의 4개 지역 교육원조계획을 확대했고 60년부터 3년간 가맹국의 기부로 「아프리카」제국 긴급교육 원조계획을 실시하여 「남·북 문제」를 사실상 크게 떠맡게 되었다.
지난 5월 「파리」에서 열린 집행위에서 문맹퇴치를 위한 특별기금제도가 생겨났다. 전 인류의 약 5분의 1인 7억5천만명이 문맹, 이 문맹퇴치사업은 그보다 앞선 지난해 가을 「테헤란」에서 열린 세계문교장관회의에서 시작되었다. 우리 나라의 문맹은 27.9%(기획원 60년 통계), 작년에 제주도의 문맹퇴치 사업을 끝냈다.

<늘어나는 예산 인구 비율 따라>
문화면에선 「아스완·하이·댐」으로 수몰의 위기에 처한 「아랍」의 「누비아」 유적보존을 전세계에 「어필」하여 그곳을 구해냈고 작년부터 태평양의 「구로시오」(흑조) 국제합동조사계획(10년)과 「국제 수문학 10년 계획」을 설립, 우리 나라를 비롯해 미·소 등 20여개국이 이 활동에 참가하고 있다.
「유네스코」의 예산은 47년도에 6백95만「달러」, 그러나 65∼66 2년간의 예산은 「유엔」에서 오는 재원을 합해 무려 1억「달러」, 1년 단위로 고치더라도 7배로 늘어났고 67∼68년도에는 다시 8.6배로 불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각국에서는 대는 분담금은 인구와 국민 소득율에 따르고 있으나 미국이 거의 3분 1을 맡고 있고 전체 예산의 1% 미만인 나라가 회원국 백 20개국 중 1백개국, 우리 나라는 대충 매회 10만「달러」를 내어왔다.

<새 회관 건립돼 활기띠울 한위>
50년 6월에 가입한 우리 나라는 6·25동란으로 사실상 활동이 중지되었다가 4년 뒤인 54년 1월30일 한국위원회를 조직, 본격화하였고 그보다 10년 후인 63년에 「유네스코」활동에 관한 법률이 공포됨으로써 범국민적인 활동으로 번져갔다.
그 동안 한국위원회는 「구로시오」조사, 국제수문학조사 및 동서문화상호 감상과 문맹퇴치사업 이외에도 독자적으로 영문월간지 「코리아·저널」을 발행, 우리 문물의 해외소개에 노력해왔다. 금년내로 명동 13층 건물이 완공되면 우리 나라에 있어서의 「유네스코」의 활동은 더욱 본격화할 것이라고 관계자들은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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