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에 갇힌 교회는 '구원의 방주가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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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反) 신학'이란 저자의 작명(作名) 이 아니다. 안병무(1922~96) 와 함께 민중신학의 또 다른 이론가 서남동(1918~84) 이 "모름지기 이 시대 신학하는 행위란 반(反) 신학이어야 한다"며 만들어낸 문패다.

문제는 "신학이란 것도 복잡한데, 안티 신학이라니 머리가 지끈거린다"고 할 독자도 있을 것이다. 천만의 말씀이다. 현대문학의 영원한 청년 김수영(1921~68) 의 반시론(反詩論) 을 떠올려 보자. 그는 "시(詩) 여, 침을 뱉어라"고 했던가?

그 자리에 '한국교회' 혹은 '신학'을 집어넣을 경우 이렇게 된다. "한국교회여, 침을 뱉어라". 크게 어렵지 않은 이 신학 에세이의 메시지 요약으로 이만한 명제가 없을 듯싶다. 그만큼 『반신학의 미소』는 대중적 인문서라는 최근 출판 흐름에 충실하다.

지난해 오강남의 『예수는 없다』('행복한 책읽기' 2001올해의 책 선정) 가 뚫어놓은 길을 다시 넓히는 작업이다.

제도교회의 철옹성에 갇혀 있던 신학마저 '동시대를 호흡하는 인문서'의 흐름을 탄 것이다. 따라서 민중신학의 제3세대 맹장인 저자가 "한국교회는 암세포"라며 파천황(破天荒) 의 독설을 한다 해도 놀라면 안된다.

"돌진적 경제성장이 확산되던 바로 그 시기에 한국교회 또한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한국 기독교는 이런 사회적 위기와 아노미 현상의 반사이익을 챙긴 것이다. '레드 콤플렉스'는 바로 그 단적인 예다.

교회는 반공 이데올로기와 '적'에 대한 분노를 재생해내는 생산공장이었다. 그리하여 교회는 경제성장이 만든 고통을 성찰하는 영성(靈性) 을 간직할 수 없었다.

아니 교회의 사회사적 위상은 차라리 제거해내는 편이 훨씬 나은 암세포에 불과했다."(46쪽)

김진호는 사람들이 기겁해할 말을 기회 나는 대로 던졌던 사람이다. "올바른 사회를 위해서라면, 한국교회는 문을 닫는 것까지 각오해야 한다"고. 이 무슨 말인가?

교회를 '구원의 방주'로 생각하고 신앙과 비신앙 사이에 칸막이를 쳐온 '우리 교회 중심주의'를 버리자는 문제제기다. 따라서 이 책은 교회 내부고발자의 목소리다. 그렇다면 열린교회를 지향하는 젊은 신자들의 그룹 '뉴스 앤조이'와는 어떻게 다를까□

답은 자명하다. 『반신학의 미소』는 교회 현장을 넘어 2천년대 민중신학의 모색이다. 그의 입을 빌려보자.

"반신학이란 '서양-백인-남성의 눈'에 근거했던 서구 주류신학을 해체하려는 꿈을 담고 있다. 나아가 이러한 서구신학 해석학의 거점인 교회의 해체를 꿈꾸는 것이다. 자폐적 태도를 취해온 교회는 도그마로부터 해방된 신학 실존의 새 양식을 찾아야 한다.

그 점에서 반신학은 대안 신학이다." 즉 신학이 '하늘 위에 살림 차린 딴 동네'가 아니고 인문학, 아니 지금 이 사회와 같은 과제를 안고 있다는 발견이 중요하다.

저자의 목소리는 굳어진 통념에 거듭 충격을 가한다. 본래 예수 자체가 '분노하는 힘'을 갖고 있었으나, 사회가 그런 가시를 차례로 배제해왔다는 비판이 그것이다.

서구의 경우 현재 4개 복음서 외에 최근 예수연구 성과를 반영해 만든 제5의 토마복음서를 포함시키고 있는 움직임을 소개하는 대목도 괄목할 만하다.

그것은 지난 세기 신학의 실제적 의미를 추스려 신약성서를 다시 만들자는 제안이라는 것, 또 "기독교가 교회 중심주의를 사회문화적으로 가치있는 종교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개혁적 관점"(2백4쪽) 이다.

19세기적 지식대중들은 경천동지할 소리라고 하겠지만, 실은 그게 지구촌의 새로운 상식이다. 안병무도 "성경을 고전의 하나로 읽자"는 말로 보다 급진적인 제안을 던진 바 있지않은가!

그런 점에서 『반신학의 미소』는 90년대 이후 비판의식을 잃어버린 채 몽롱해진 우리를 뒤흔들어주는 읽을거리다. 근대 이후 이 사회의 주류이자 기득권 체제였던 닫힌 종교의 벽을 깨는 작업으로 받아들여도 좋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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