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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경남 거제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언제부러 그렇게 불렸는지 몰라도 거제섬을 일컬어「수난의섬」이라 했다. 이는 나라의 풍운에항상 민감한 탓이리라. 낙동강하류에다 머리를 잇대고 진해만을 가로 질러 멀리 한려수도의 길목에서 꼬리를 멈춘섬. 기록에 의하면 이섬의 처음입주자는 난파선원들. 조상의수난을 이어받은탓인지 섬사람들은 이섬의역사가 시작된이래 2천여년동안 한때도 태평한날을누릴틈이없었다.
신라때부터겪기시작한왜구의노략질은고려이조로내려오는동안 끊임없이 계속되었고 고려원종12년엔 이섬을 아예왜구들에게내맡겨버렸었다. 이조실록에의하면섬사람들이 이섬에 다시돌아온것은 이조세종4년. 고려의 정중부난, 삼별초난, 임진왜란, 청일 노일전쟁등 숱한전란에 시달러고 가까이는 6·25때포로수용소기지로 사용되는등 파란이겹친섬이다. 그래그런지 이섬엔 전흔의 산성이 군데군데 아직도 남아있고 골마다 전쟁의 애화가 구전되고있다. 왜구를막기위해 쌓았다는 고현성등 19개의성과 왜구들이 이섬을점령했을때쌓은 탑포산성등4개의 왜성은 밀고밀리던 옛전장터.
정중부난을 만나 고려의종(18대)이 유행당한것을 비롯, 역대지배계급들이 권좌에서물려나 귀양살이하던 이 섬엔 의종이 눈물로 지새웠다는폐왕성등의 애화가 깔려있다. 이 거친 섬에근대화의 새 기풍이 불어닥친것은 1907년. 서당생들이 치렁치렁 늘어뜨린 머리를 깎고 이해2월10일에 세운 거제보통학교에 입학한것이 새문명과 접촉한 효시가되었다.
이제는 바다에서 육지에서 개발의 새기운이움터 그옛날 고려의종이건넜다는소위「전하도」(지금의견내량)에도 다리가서게 되었다. 4억5천만원의 공비를들여 내년까지준공예정인1천8백29「미터」의이다리는「섬사람」이라는 달갑잖은 역사를씻어주는「육지에의꿈」.
해상교통의 발달로 가까운 부산·마산·충무·진해와 연결, 뭍의문물을받아들이고, 굳센 섬사람기질은 바다의개발과 험준한 산악의개척에까지 손을뻗쳤다.
거제섬을 둘러싼 사면의 바다는 문자그대로 황금어장. 그중에도 장승포읍 능포리어강은 이조왕실의진상어장이기도했다.
일본대마도와 해협을 끼고있는 이섬은 지난6월지세포어업전진기지설치와함께 벅찬 수산개발의 꿈을 안고 1천8백55척의크고 작은 어선들이 섬을 종횡으로 누비고있다.
연간 어획고는 2천5백만「킬로그램」. 이섬의또 하나의 명물은 산골짜기마다 방목하고 있는소. 전체농가홋수 1만4천1백34가구와 거의 맞먹는 9천8백51마리의 소를 기르고있다. 농가홋수에 비해 소가 많기로는전국에서 으뜸. 그도 전부 암소다.
군당국은 한우의 종자개량을위해 지난해 영국산「애바딩·앵그스」종우10두를수입, 그수정에 성공하여 군내 전농우의개량「붐」이일고있다. 이「에바딩·앵그스」종은 보통한우보다 체중이 거의배며육질도좋고 우리 풍토에알맞는다는것. 거제군은한우의 종자개량과함께 산림의 촌방경신은 행정력을 모으고있는데 이섬에많은 소나무를 경제성이높은 삼나무로 바꾸는작업이 지금 한창이다.
효과연도인 30년후에는 56억원의 소득을올려 농가호당 40만원의소득을 내다본다고. 그러나 한가지 아쉬운것은 이섬의 역대행정책임자들은 이고장의 빼어난 풍물을 찬탄하면서도 관광객을 맞을준비를 전혀하지 않고있다. 민족의 수난이얽힌10여개의 산과 둔전, 기암괴석으로수놓은 거제해금강을 관광자원삼아 관광객을 유치한다면 거제의면모는 크게달라질것이라고유지들은 입을모으고 있으나 당국은 바라보고만 있을뿐 손을안쓰고 있다는것.
역대조정의 냉대로 버림받은 유형의땅 거제섬이 즐겨찾는 내고장으로 변할날을 손꼽으며 도민들은 그날을위해 오늘도건설에 나서고있다. <충무=김영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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