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도 장관도 “공식일정 없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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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오후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왼쪽)와 문희상 민주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의석에 앉은 채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 [김경빈 기자]·[뉴시스]

정부조직법 개정안 처리는 결국 3월 국회로 넘어가게 됐다. 새누리당은 5일 임시국회 소집요구서를 제출했지만 일러야 8일부터 시작된다. 정부 출범 후 최소한 12일 동안 정부조직 마비가 이어지게 된 셈이다.

 ◆“6일 일정은 아베 총리와 통화뿐”

박근혜 대통령은 5일에도 공식일정을 잡지 않았다. 취임 후 벌써 네 번째다. 매주 화요일 아침에 열리는 국무회의는 지난주에 이어 이날 또다시 무산됐다. 지난주와 달리 정홍원 총리가 임명된 상태라 이번 주의 회의 취소는 이례적으로 받아들여졌다. 때문에 박 대통령이 국무회의를 열지 않은 건 민주당을 향한 ‘정치적 시위’라는 해석이 나온다. 청와대는 5일 오후 “박 대통령의 6일 일정은 일본 아베 총리와의 통화 1건뿐”이라고 예고했다.

 청와대는 국정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매일 오전 8시 일일상황점검회의에서 허태열 비서실장과 수석비서관들이 모여 각 부처의 업무상황을 챙기기로 했다. 또 관계 수석이 모여 각 부처 현안에 대해 논의하는 ‘스폿 회의’도 개최할 방침이다.

 ◆‘증세 없는 복지’ 속도 떨어져

정부부처 장관들도 공식일정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기획재정부는 정부 세종청사 대신 서울의 예금보험공사에 사무실을 차린 현오석 장관 후보자에게 업무보고를 하고 있다. 하지만 현 후보자는 13일로 예정된 인사청문회 준비에 매달려야 할 처지다. 물가관리가 비상이지만 경제 리더십은 공백 상태다. 이 틈을 타 최근 식품업계는 슬쩍 가격 인상을 발표했다.

 ‘증세 없는 복지’를 위한 정책도 속도가 떨어진다. 5년간 무려 135조원의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지, 나가는 돈은 어떻게 줄이고 세율 인상 없이 어떻게 세수를 늘릴 것인지 구체적인 검토도 사령탑 부재로 쉽지 않다. 요즘 엔저로 수출기업들이 어렵다고 난리지만 특별한 대책도 찾아볼 수 없다. 농림수산식품부에서는 삼겹살과 달리 소비가 적은 저지방 부위 돼지고기 활성화를 위해 관련 법 개정을 준비 중이지만 장관 서명을 받을 수 없다. 영세 어민들을 보호하기 위한 연근해법도 마찬가지다.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을 준비하는 공정거래위원회는 부위원장 체제다. 한 고위 관료는 “아무리 대행체제라고 해도 부위원장이 서명하기는 좀 그렇다”고 말했다.

 미래창조과학부 출범이 지연되면서 과학계에선 16조9000억원에 이르는 국가 R&D 예산의 편성·배분이 늦어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의 과학 담당자들은 “예산 배분에 새 정부의 국정과제와 철학이 반영돼야 하는데, 부처 창설이 지연돼 일정대로 진행될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더구나 교과부 등 조직 개편이 예정된 부처들은 지난달 20일 남은 예산을 국고에 반납했다. 새 부처 창설이 늦어지면 산하 기관 등에 주는 운영 경비·연구비 등의 집행이 중단될 수도 있다.

 ◆“총리가 부처 관장해야”

새 정부 주요 인사 중 정상적으로 활동하는 사람은 정홍원 총리 정도다. 정 총리는 국회 본회의에 출석해 정부조직법의 조속한 처리를 당부했다. 야당 의석에선 “대통령에게 가서 누가 잘못했는지 잘 말하세요” “너희들 여당이나 잘해”라는 등의 야유가 쏟아졌다.

 정 총리는 신임 인사차 전두환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를 잇따라 예방했다. 전 전 대통령은 “남자끼린 서로서로 편한 것도 있는데, 박 대통령은 아무래도 여성이라 좀 어려운 점이 있다”며 “다행히 박 대통령은 경륜이 풍부하고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등 경험도 많이 하셨다”고 말했다. “각 부처의 일을 총리가 관장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더 강경해진 여당

새누리당의 입장은 더 강경해졌다. 김기현 원내수석부대표는 “여야가 잠정 합의했던 문안 자체는 효력이 없고, 논의를 새로 해야 한다”며 “전체 타결될 것을 전제로 양보했지만, 미래부 관련된 것은 물론이고 나머지 사안들 중 양보했던 것은 무효”라고 말했다. 이한구 원내대표도 “정부조직법에 대해 합의가 안 되면 그간 합의한 것은 하나도 발효 안 될 것”이라고 했다. 여야가 잠정 합의한 4대 강 사업 국정조사 등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는 것으로 대야 압박의 성격이 강하다.

 민주당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은 “대통령이 야당을 상대로 질타하고 욕하고 잘못됐다고 하면 정치가 언제 통합이 되겠느냐”며 “가장 힘을 가진 대통령이 마음을 열고 ‘국회에서 해결하라’고 해야 한다”고 맞받아쳤다.

글=김한별·박성태·강태화 기자
사진=김경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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