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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남제헌의회의 홍일점「트란·티·사」여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지난9월에 실시된 월남의 제헌의회의원선거에서 홍일점으로 당선된 「트란·티·사」여사는 「자애로운 어머니의 심벌」로 의회안팎에서 인기가 대단하다. 1백17명의 의회의원중 득점순위3위의 영광을 차지한 「사」의원은 「고·딘·누」여사와는 대조적으로 정계에서 새로운 여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2천년전 「트룽」자매가 월남독립운동에 헌신한이래 「고·딘·누」여사에 이르기까지 월남여성은 정계는 물론 상가나 공장이나 농장에 이르기까지 빼놓을 수 없는 역할을 맡아왔다.
지난주 제헌의회가 첫문을 열고 「사」여사도 국민의 대변자로 첫선을 보였다. 「사」의원은 선거운동때 자신의 「심벌」로 자기 어린애들 8명과 함께 손을 맞잡고 찍은 사진을 들고 다녔다. 자기애들에게처럼 국민들에게도 따뜻한 모성애를 나누어 주고 싶은 심정에서 였다. 이렇게하여 「사」여사는 상처뿐인 「지아딘」선거구유권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득점순위3위의 영광까지 차지하고 당선되었다. 「사」의원은 의회내에서 크게 활약하기시작, 의원자격심사위원회와 수해구조위원회의위원에 선출되었다. 물론 여성에 관한 문제는 자신이 「리드」. 의회에서 임신한 수인의 석방을 요구하자 쉽게 관철되었다. 「사」의원은 자기가 의회의장에 출마했더라면 당선될 수 있었을 것이라고 헤아리고 있다. 그러나 「고·딘·누」여사의 과오를 재연시키는 것 같아 출마하기엔 너무 뻔뻔스러웠다는 것이다. 그는「누」여사가 『여성이라는 것을 망각하고 남성처럼 놀려했다』고 말하고 있다. 「사」의원은 북부 「베트남」에서 부유한 미곡상의 무남독녀로 태어나 다복하게 자랐다. 그림과 시를즐기고 사회사업을 공부했다.
소녀시절에 「사」여사는 남자애처럼 자라나 14살 때 순경이 길가 광주리장사를 곤봉으로 때리는 것을 보자 곤봉을 낚아챈 일도 있었다. 「사」의원 일가는 「베튼민」독립전쟁을 지지했으나 전쟁이 끝나자 공산주의자들에게 집을 빼앗겼다. 지금 관사생활을 하고 있는 남편과 함께 54년 「사이공」으로 탈출해왔다.
이들부부는 피난민들이 들끓는 「지아딘」지방에서 학교를 세우고 「가톨릭」어머니회를 조직하고 전쟁미망인구조사업을 벌이는 등 사회사업에 앞장서서 차츰 알려지기 시작, 오늘의 영광을 차지하게 되었다. 8남매의 어머니로서, 지금은 「사」의원으로서, 홍일점이지만 『의회에서 큰 책임을 느낀다』는 것이다.
도 『의원부인들의 대변자이기도 하다』고 「사」의원은 동료의원들에게 일격.
임기6개월등안 월남국민들은 「사」의원에게 크게 기대하고있다. <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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