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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배용의 우리 역사 속 미소

이상향을 꿈꾸는 긍정의 미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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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이배용
전 이화여대 총장

6세기 말 백제 부여시대에 제작된 금동용봉대향로는 동아시아에서 가장 우수한 걸작품이다. 불교의 연화장 세계와 도교의 신선사상이 혼합되어 이상향을 꿈꾸는 조형들이 정교하게 디자인되어 있다. 전체 높이 64cm로 사람이 16명, 물고기를 포함한 동물이 39마리, 74개 산봉우리, 나무, 바위, 계곡, 폭포, 호수 등이 아기자기하게 표현되어 있으며 열두 군데의 구멍에서 향이 피어오르는 형상이다.

국보 제287호 ‘백제금동용봉대향로’ [사진 문화재청 홈페이지]

 향로의 맨 밑받침은 한 마리의 용이 힘차게 승천하는 기상으로, 연꽃의 줄기를 입에 물고, 향로의 몸 전체를 떠받들고 있다. 몸통은 두 개의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아랫부분은 연꽃잎과 또 그 사이마다 여러 모양의 인물부조상이 조각되어 있다. 몸통의 윗부분은 삼신산(영주산·봉래산·방장산)을 중심으로 펼쳐진 신선의 세계다. 제일 꼭대기에 하늘로 올라갈 듯한 봉황이 날렵하게 서 있고, 바로 밑에는 오른쪽 머리카락을 묶어 길게 내려뜨리고 있는 다섯 명의 악사들이 환한 미소를 지으면서 피리·비파·소·현금·북을 신나게 연주하고 있다. 그 아래에는 다섯 개의 산봉우리가 있고 다섯 마리의 원앙새가 앉아 음악에 맞추어 노래하거나 비상하는 모습이 매우 아름답다. 그 밑에 계곡 사이마다 새겨진 사람들의 모습도 다양하게 묘사되어 있는데, 낚시·명상·사냥하는, 그리고 머리 감는 사람 등의 각양각색의 표정이 흥미롭다. 새겨진 동물들도 가릉빈가(극락조)·코끼리·원숭이·학·사슴·호랑이·멧돼지 등 실제 동물과 상상의 동물들이 총 망라되어 있다.

 이 백제 금동용봉대향로는 1993년 부여 능산리 고분군 옆에 능산리사지에서 발견되었다. 백제왕실의 원찰이었는데, 660년 백제가 멸망할 때 절도 폐사되어 이 향로는 땅 속에 묻혀졌다. 1300여 년 만에 그 일대를 발굴하면서 다시 세상에 모습이 드러나게 되었는데, 다행스럽게도 훼손되지 않고 원래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백제가 점차 어려워지는 상황 속에서도 중흥을 꿈꾸는 삼라만상의 응원과 하모니, 이상세계를 향한 긍정의 미소는 이 향로를 더욱 빛나게 한다.

이배용 전 이화여대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