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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맨에 빠진 김정은, 부인 이설주는 '뒷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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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김정은은 농구에 푹 빠져 있었다. ‘코트의 악동’이라 불린 NBA(전미농구협회) 선수 출신 데니스 로드맨 쪽으로 몸을 기울여 어깨가 닿을 정도의 밀착대화를 나눴다. 바로 옆 부인 이설주는 뒷전으로 밀렸다. 지난달 28일 북한 관중으로 꽉 들어찬 평양 유경정주영체육관. 미 묘기농구단 할렘 글로브트로터스(the Harlem Globetrotters)와 조선체육대학 횃불팀의 혼합경기를 관람한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의 모습이다.

 김정은은 박수 갈채 속에 등장한 로드맨에게 옆자리를 권했다. 테이블엔 미 자본주의의 상징인 코카콜라가 놓여졌다. ‘USA’라고 크게 쓰여진 검은색 모자를 쓴 로드맨은 선글라스를 벗지 않았다. 김정은이 스위스 유학 시절 로드맨을 비롯한 NBA 선수들을 선망의 대상으로 삼았던 농구광이 아니라면 상상도 못할 일이다. 최고지도자가 된 이후에도 김정은은 코트의 바닥을 직접 만져보고, 공을 능숙하게 튀겨보는 등 농구에 대한 애착을 보여왔다.

 로드맨 옆 자리에는 박명철 조선올림픽위원장이 자리했다. 헤비급 세계챔피언을 따낸 전설의 프로레슬러 역도산의 사위이자 북한 체육계의 실세를 김정은이 배석시켰다. 6자회담 단장을 지낸 미국통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도 자리했다. 권력 실세 최용해 총정치국장도 이날은 뒷줄 관중석으로 밀려났다.

 북한과 미국 선수가 섞여 홍팀·백팀으로 치러진 경기는 110대 110으로 비겼다.

 로드맨 일행은 김정은에게 할렘 글로브트로터스 선수복을 선물했다. 이런 장면들은 1일자 노동신문 1면 전체에 사진과 함께 실렸다. 2면 절반도 미국 농구선수 소식으로 채워졌다.

 김정은은 조선올림픽위원회가 로드맨 일행을 위해 개최한 만찬에도 참석했다. 양식 코스요리에 일식 생선회도 나온 연회는 국빈급 수준이었다. 와인도 7~8종 준비됐다. 이 자리에는 현역 시절 세계 최장신(2m35㎝)을 기록한 북한 농구선수 출신 이명훈도 함께했다. 김정은은 “로드맨 일행이 평양을 방문해 우리 청소년들에게 훌륭한 경기를 보여줄 기회를 마련해준 데 대해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AP통신에 따르면 로드맨은 1일 평양 순안공항에서 출국에 앞서 “(김정은은) 진짜 대단한 친구(the guy’s really awesome)”라며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과 김일성 전 주석을 “위대한 지도자”로 표현했다. 로드맨은 “(김정은이) 북한이 그를 좋아하는 것을, 아니 좋아하는 게 아니라 사랑하는 것을 자랑스러워한다”라고도 덧붙였다. 반면 로이터통신은 로드맨이 “(김정은은) 위대한 지도자였던 할아버지, 아버지와 같다. 대단한 녀석(awesome kid)이다”라며 “그는 매우 정직하고 아내를 대단히 사랑한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김정은과 로드맨의 만남은 파격이다. 김정은은 앞서 1월 평양을 방문한 에릭 슈밋 구글 회장은 만나지 않았다. 정부 당국자는 “얼굴에 피어싱을 한 로드맨 일행의 자유분방함이 여과 없이 북한 주민들에게 전달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3차 핵실험(2월 12일) 이후 미국을 향해 ‘전면 대결전’을 공언한 김정은이 로드맨 초청 카드로 화전(和戰) 양면전술을 구사하는 것이란 분석도 제기된다. 선수 시절 전설의 스타플레이어였던 로드맨은 지난해 전처에게 부양비를 주지 않아 고발당했으며, 당시 그의 변호사는 로드맨이 생활비를 대기조차 어려울 정도의 파산 상태라고 밝혔다.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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