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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격조사「가」의 재발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한글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될 3백25년전 한글체 서한 하나가 최근 어느 국문학자에 의해 햇빛을 보게 되었다. 궁체 한글로 유려하게 쓰여진 이 서한은 봉림대군(효종)이 청도 심양에서 한양에 부친 것. 병자호란의 전화가 잦아들 무렵 「봉림대군」 내외는 심양에 억류되어 고뇌의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봉림대군의 친필로 쓰여진 이 서한은 신정을 맞아 사은사편에 보내온 장모 편지의 답장이었다. 비통한 생활 속에서도 따뜻한 문안을 드리는 내용이 깃들였다.
건국대 교수 김일근씨는 국문학적으로 이 편지가 귀중하게 평가되는 것은 그 귀절 속에 나타난 글자 하나 때문이라고 한다. 이 편지 속에는 「늙으신 내가」(늙으신 네가)라는 문구가 있다. 이제껏 주격조사인 「가」의 정체는 국문학자들의 논란 속에서 정확히 밝혀진 일이 없었다. 고려 설, 이조 설이 서로 엇갈리고 있었다.
그러나 이 효종의 서한은 「신사 정월 초파일」로 그 날짜가 밝혀져 있다. 그 때는 인조 19년(1641년)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가」의 기원을 알 수 있는 최고의 문헌으로서 효종의 서한은 괄목할 자료이다. 김교수는 거기에 더해 다음과 같은 의미를 말하고 있다. ①국내가 아닌 국외에서 쓰여진 한글 기록으로는 유일한 것이다. ②주격 「가」의 기록으로는 지금까지 최고의 것이다. ③국사를 배경으로 한 내용이기 때문에 사료로도 값이 있다. ④연대와 서명이 똑똑히 표시되어 있다는 점.
더구나 이 한글 서한이 천민의 손 아닌 왕실의 품속에서 쓰여진 것은 한글의 품위와 긍지를 높여 주는 흐뭇한 자료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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