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원희 가라사대, 싸나이답게 화끈하게 살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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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개봉하게 될 <이것이 법이다>에서 주인공 봉 형사로 출연한 임원희를 만났다. 이제는 <다찌마와 리>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솔직한 고백과 함께 미래의 청사진, 평범한 듯 예사롭지 않은 연기관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다.

임원희, 그는 이제 막 화려한 조명 아래로 들어온 예비 스타다. 그??예비'라는 말을 붙인 이유는 아직까지 그의 이름 석자와 얼굴을 매치시키지 못하는 사람이 더러 있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그에 대한 설명을 좀 해야겠다.

1970년생으로 서울예대 연극과를 졸업한 후 연극 무대에서 처음 배우라는 타이틀을 달았다. 크고 작은 영화들에 얼굴을 비쳤지만 그가 눈에 띄기 시작한 최초의 작품은 디지털 인터넷 영화 <다찌마와 리>다. 한 가지 덧붙인다면 맥도날드 CF도 있다. 개봉 석 달 만에 조회수 200만이 넘었던 <다찌마와 리>에서의 그는 정말'??이었다.

1970년대 분위기의'촌티 패션'과 기름기 뚝뚝 떨어지는'2:8 가르마 머리'. 무엇보다 "음핫핫핫" 소리를 내며 과장되게 웃고, "사나이 가슴에 촉촉한 단비가 내리는구나" 식의 역시 1970년대 영화에나 나올 법한 비장한 말투가 압권이었다. 그로 인해 젊은 남자들 사이에서는 진정한'싸나이'의 전형을 새로 찾고자 하는 붐이 일기도 했다.

덕분에 캐스팅 전선에 파란 불이 들어왔고 올해는 곧 개봉하는 영화 <이것이 법이다>에서 주연을 맡게 됐다.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과격한 다혈질의 강력계 봉수철 형사. 나름대로 멋을 부리지만 체크 바지에 연두색 점퍼를 걸치는 수준밖에는 안 되고, 강 형사(신은경)를 사랑하지만 단수가 낮아 느끼하게 비치는 캐릭터.

"요즘 시대가 원하는 인물이 아닐까 싶어요. 거죽만 젠틀하고 댄디한, 속은 미꾸라지 같은 남자들이 신사 대접을 받는 요즘 한 여성만을 그렇게 순진하고 따뜻하게 지켜주고 사랑하는 남자가 몇이나 있겠어요."

"봉 형사와 실제 성격은 닮았나요?"
"봉 형사가 마음에 드는 멋있는 캐릭터라고 얘기하고 나와 닮은 사람이라고 하면 내 자랑 같잖아요.(웃음) 다혈질이고 정이 많은 건 비슷해요. 싸움은 잘 못하지만 불같이 화를 낼 때는 무섭고. 그런데 폭발하는 일은 잘 없어요. 전형적인 O형의 성격이죠." 이렇게 말하는 것이 무에 그리 자기 자랑이라고 그리 쑥스러워하는지. <다찌마와 리>에서의'오버 맨'이 앞에 있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는다.

"이제 <다찌마와 리> 얘기는 그만했으면 좋겠어요. 나도 지겹고 듣는 사람들도 지겨울 것 같고. 물 흐르듯 흘려보냈으면 좋겠어요. 내가 앞으로 보여줄 연기는 많으니까. 아, 저 사람이 저런 연기도 잘하는구나. 이런 소리를 듣고 싶고 자신도 있어요."
물 흐르듯…. 그는 무명 시절 동안 어떤 일들을 거쳐 여기까지 왔을까?

서른 살인 2년 전까지만 해도 그의 수중에는 돈이 말라 있었다(연봉이 2백∼3백만원 수준이었다). 재작년 연말, 사람들은 망년회를 한다고 이리저리 몰려다닐 때 그는 조신하게(?) 집에만 있었다. 몇 만원 하는 회비를 낼 수 없어, 후배들 술 한잔 사줄 돈이 없어서였다. 제야의 종소리가 들릴 때 그는 소주 한 병을 마시기로 했다.

너무 적막하고 자신의 처지가 신산스러워. 그런데 있는 돈은 달랑 소주 한 병 값뿐. 안주로 두부를 사려고 하니까 2백원이 모자라더란다. 여름 옷 주머니부터 침대 밑까지 훑어서 찾아낸 돈은 겨우 1백원. 그는 집 안에 있던 빈 병을 팔아 3백원을 받았고, 그 돈으로 두부와 소주를 사서 혼자 만족할 만큼 슬픔에 젖을 수 있었다고 한다. 두부 값을 깎을 만큼 변죽이 좋지 못한 그의 성격을 뭐라 해야 할까.

"그래서 어디 연애는 하겠어요?"

"저 여자 친구 있어요. 사랑은 화끈하게 해요. 소위'작살 연애'라고 하죠.(웃음) 계산 같은 거 하지 않고 가슴이 확 꽂히는 대로 사랑하고, 서로 길들여지지 않는다면 아프더라도 미련 없이 헤어지고. 잡아야 한다고 생각하면 화끈하게 매달리는 스타일.(웃음)"
그는 힘들고 궁핍한 무명 배우 시절이 길었지만 다른 데 눈 돌리지 않고 배우로서 자신을 지켜온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고 말한다. 좋아하는 것을 계속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행복인지 자신은 안다며.

코믹 배우로 남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어차피 미남은 아니니까, 개성파 배우 부류에 속하겠지만 이 집단의 배우들이 모두 코미디 연기만 하는 것은 아니니까. 그렇게 되기도 싫고.

"<이것이 법이다>에서는 오버 연기를 자제했어요. 앞으로도 <다찌마와 리> 식의 연기는 지양하려고 해요." 고층 아파트에서 스턴트 맨 없이 직접 와이어 줄을 매고 뛰어 내릴 만큼 열심이었던 임원희의 연기. 덕분에 <이것이 법이다> 시사회에서 그의 연기는'살아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가 말하길 배우는 사람을 관찰하는 사람이란다. 사람이, 사랑이 지겨워지기 전까지 계속 배우로 남을 것이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세월을 흘러가면서 끊임없이 사람들을 관찰하고 한층 업그레이드된 연기를 보여주겠다는 임원희. 편식하고 있는 한국 영화 밥상에 그릇은 화려하지 않지만 아주 맛깔스러운 반찬이 오를 것이 예감된다. 그리고 한창 촬영 중인 한국 최초의 패러디 영화 <재미있는 영화>에서의 진지하고 맛있는 연기가 벌써부터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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