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 '평화의 영웅' 부활

중앙일보

입력

'자유와 정의와 평등을 위해 싸운 인간'.

복싱 영웅 무하마드 알리(59)는 현역 시절인 1975년 한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이런 인간으로 세인의 기억 속에 남게 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그의 바람은 서서히 실현되고 있다.

지난해 크리스마스 시즌 미국 전역에서는 그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알리'가 개봉됐다. 마이클 만이 감독한 이 영화는 현재 미 흥행차트 상위에 오를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알리 역을 맡아 열연한 윌 스미스는 오는 21일(한국시간) 시상식이 열리는 제59회 골든글로브 남우주연상 후보에 랭크됐다.

할리우드의 영화산업 종사자들은 최근 이슬람권에 방영될 광고물을 제작하면서 알리를 모델로 선정했다. 대테러 전쟁으로 멍든 이슬람권 설득에 그만큼 적합한 인물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미국 애국주의자들의 이단아이자 떠벌이 권투영웅으로만 불리던 그가 진정한 영웅으로 재조명되고 있는 것이다.

알리의 화려한 프로복싱 캐리어는 원래 분노와 복수심에서 출발했다. 60년 로마올림픽에 출전, 라이트헤비급에서 금메달을 따냈지만 그토록 자랑스러운 금메달이 인종차별론자 앞에서 조롱의 대상으로 전락하자 알리는 격분했다. 그는 곧바로 말콤 엑스가 이끄는 이슬람단체에 가입하고 이름도 캐시어스 클레이에서 무하마드 알리로 바꿨다.

동시에 프로로 전향한 그는 64년 2월 '살인펀치'로 이름나 있던 소니 리스튼과 맞붙었다.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쏘겠다"는 유명한 말과 함께 링에 오른 그는 7회 KO승을 거두며 영웅의 탄생을 알렸다. 하지만 전쟁의 그늘은 그의 승승장구를 가만히 놓아두지 않았다.

67년 베트남전 징집을 거절하자 언론은 그를 징집 거부자라며 맹비난을 퍼부었고, 그는 결국 징역형과 함께 선수자격이 박탈되는 아픔을 겪었다. 링에 설 수 없었던 알리는 흑인 인권운동과 반전운동에 더욱 적극적으로 가담했다. 70년 복권된 그는 프로복싱사를 새로 쓰기 시작했다. 74년 10월 당시 헤비급챔피언 조지 포먼을 8회 KO로 꺾고, 78년 9월엔 36세의 나이로 레온 스핑크스를 누르고 세번째 챔피언 자리에 올랐다. 프로복싱 사상 유례없이 세번의 타이틀을 거머쥔 것이다.

하지만 세월의 무게를 못견딘 그는 마침내 38세 때이던 80년 래리 홈스에게 무릎을 꿇고 말았다. 60전56승(37KO)4패, 19차례 타이틀 방어라는 대기록과 함께 그를 찾아온 것은 '파킨슨병'이라는 후유증이었다. 그전에도 그랬듯 시련은 알리를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

걷기조차 힘든 몸으로 각종 사회운동에 참여하면서 93년에 이란-이라크전쟁 포로 교환 중재, 아프리카 난민 구호활동을 펼치는가 하면 99년엔 아프리카 부룬디 내전의 평화회담을 중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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