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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인순교 선열의 시복을 앞두고|유홍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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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몇달전에 「로마」 교황청으로부터 들어온 소식에 의하면 지금으로부터 꼭 1백년 전에 우리나라를 근대화하기 위하여 온갖 정성을 다 바치다가 모진 백해로 말미암아 피를 흘린 병인년의 순교자 근 1만명 중에서 가장 모범된 신앙을 드러낸 26명을 가려서 복자의 자리에 올리는 시복식이 가까운 장래에 「로마·베드로」 대성당에서 거행되기로 되었다 한다. 그러므로 복자란 어떠한 칭호이며 우리나라에서는 어떻게 하여 복자가 생기게 되었나 하는 것을 살펴봄도 뜻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복자(Blessed)란 「로마」 교황청에서 교회 창설이래 가장 모범되게 신앙을 드러내면서 목숨을 바친 순교자들의 행적을 엄밀히 거듭 심사하여 그들에게 올려지는 영광된 칭호이며 그 다음으로 올려지는 높은 칭호가 성자(Saint)이다.
이러한 뜻에서 볼 때 복자란 천주십계를 가장 잘 지키면서 인류를 정의와 평화와 개명의 사회로 이끌어 올리는 일에 힘쓰다가 목숨을 바친 순교선열들에게 올리는 칭호임을 알 수 있다. 그러면 우리나라에서는 어떻게 하여 복자가 생기게 되었는가를 살펴보기로 한다.
우리나라에 있어서 천주교회가 처음으로 세워지게 된 것은 다산 정약용 등의 남인학자들이 북경으로부터 가져와진 천주교 서적들을 학문적으로 연구하다가 이승훈을 그곳에 보내어 세례를 받고 돌아와 그 동지들에게 또한 세례를 주게 하고 1784년부터 김범우의 집에 수10명 교인들이 모여 교회행사를 지내게 함으로써 이루어 졌던 것이다.
이때부터 우리 천주교인들은 천주교의 가르침에 따라 올바른 신앙운동을 일으키는 한편 온갖 미신과 사회악을 물리치고 서로 교우라고 부르면서 그때의 엄격한 네 계급제도(양반·중인·상민·천민)를 무너뜨리는 일에 앞장을 서며 교리책을 오로지 한글로 만들어 씀으로써 그 때 언문이라고 불러 쓰기를 싫어하던 국문의 애용운동을 일으키며 서신을 멀리 북경 또는 「로마」에까지 보내어 외국인 성직자를 불러들임으로써 그때의 어리석은 쇄국정책을 걷어치우려 하며 「로마」 교황청으로 하여금 독립된 교구를 우리나라에 두게 함으로써 우리나라의 국제적 위치를 높이게 하여 우리 신학생을 멀리 「마가오」 또는 「피낭」섬에 보내어 서양학술을 배워오게 하고 서양식의 한글활자와 벽돌을 만들어 책과 성당을 만들어 내며 약국 고아원 경로원을 세워 불쌍한 동포들을 구제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일들은 모두 우리나라를 근대화 하고자한 거룩한 개화운동이었으나 조상의 봉사 등을 강요하는 주자학만에 사로잡혀 있던 그때의 고루한 위정자들은 천주교를 사학이라고 불러 교회가 창설된 다음해(1785)부터 이를 몹시 박해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한·불 수호조약이 맺어진 1886년에 이르기까지 1백년동안에 걸쳐 모진 박해가 거듭되었는데 그중 큰 박해는 1801년과 1839년과 1846년과 1866년에 각가 주파적으로 일어났었다.
이러한 네차례에 걸친 큰 박해로 말미암아 아무런 죄도 없이 억울하게 피를 흘린 우리 애국선열들은 1만명을 넘었다. 그런데 그들 중에서 1839년과 1846년에 피를 흘린 순교자 79명의 행적을 엄밀히 거듭 심사한 끝에 「로마」 교황청에서는 1925년 7월 5일 「베드루」 대성당에서 이들을 복자위에 올리는 시복식을 온 세계의 사절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히 거행하게 되었으니 이는 우리나라의 성화를 위하여 목숨을 바친 거룩한 우리 순교자들에 대한 첫 번째의 국제적 일대 경사였다.
그 후 「로마」 교황청에서는 다시 1866년에 피를 흘린 많은 우리 순교자 중에서 가장 모범되게 신앙을 드러낸 애국선열 26명의 행적을 여러해에 걸쳐 거듭 엄밀히 심사한 끝에 그들의 순교 백주년을 맞이한 올해에는 이들을 또한 복자위에 올리기로 마지막의 결정을 내린다는 소식이 들어오고 있다. 이번의 시복식도 「로마」의 「베드루」 대성당에서 온 세계의 사절들이 모인 가운데 성대히 거행될 것이 틀림없으니 이 시복식은 다만 천주교인들만의 경사일 뿐만 아니라 우리 민족사상에 두 번째로 맞는 국제적 경사인 것이다.
이러한 경사를 맞음에 있어 우리 천주교인들은 그 순교자들이 피를 흘린 한강가의 절두산 (제 2한강교 둑 옆)에 웅장한 복자기념 성당을 세우고 있거니와 이러한 일은 비단 천주교인들만의 힘으로 이루어 질 것이 아니라 우리 민족전체의 힘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임을 강조한다. 왜냐하면 그 순교자들은 오로지 우리나라를 근대화 함으로써 평화와 정의의 사회를 이땅에 이룩하고자 온갖 정성을 바치다가 목숨을 잃은 성도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 민족은 모두 복자를 기념하는 사업에 힘을 모아 우리나라의 국위를 선양하는 한편 국제적 지위를 높이는 일에 힘써야 할 것이다.
요즈음 「로마」 교황청에서 우리나라에 와 있는 공사를 대사로 승격시킨 일도 온 세계의 국가에 사절을 보내고 있는 교황청이 먼저 우리나라의 국제적 위치를 높여주기 위한 고마운 일임을 생각하여 이번에 맞는 시복식에는 거족적인 큰 사업과 행사가 있어지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필자·문박·대구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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