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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분제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22일 하오1시 10분쯤 대정부 마지막 질의자였던 김두한 의원이 무엇인가 들고 나온 포장상자를 풀기 시작했다. 무엇일까? 의사당내엔 잠시 호기심과 긴장감이 떠돌았다. 중대한 서류일까? 무슨 증거물일까? 장안의 화제가 된 밀수한 「사카린」 부대일까? 그러나 순간 악취와 함께 인분이 흘러 나왔다. 점잖게 앉아있던 국무위원석은 눈 깜짝할 사이에 오물 투성이가 되고만 것이다. 이래서 국회사상 또 하나의 명예롭지 못한 이변이 기록되고 말았다. 외국에서도 간혹 볼 수 있는 일이기는 하다. 막후정치의 명수라는 일본의 「대야 반목」도 구렁이를 책보에 싸 가지고 와서 국회 발언대를 향해 던졌던 일이 있다. 그러나 인분을 끼얹은 사건은 아무래도 세계의 「톱·레코드」가 아닌가 싶다.
옛날 「이스라엘」사람들은 죄를 지은 여인을 돌로 쳐죽였지만 우리는 인분을 퍼 먹이는 풍습이 있었다. 상말에도 『똥물에 튀길 놈』이라든가 『똥 벼락을 맞을 놈』이라는 것이 있는걸 봐도 「인분제재」라는 독특한 형벌 법이 토속감정깊이 뿌리 박혀있는 것 같다.
그러나 죄인을 돌로 쳐죽이고, 인분을 퍼 먹이고 하던 그 풍습은 원시적인 시대의 일. 이제 인간은 오랜 이성의 투쟁 끝에 그와 같은 야만에서 탈피하여 오늘의 역사를 창조했다. 법이 완전치 못하다 하더라도 우리의 궁극 목표는 그것을 짓밟는 것이 아니라 완성시켜 가는데 있다. 세상이 온통 악취 투성이의 인분사회라 하더라도, 인분 속에서 들끓는 구더기처럼 더러운 인간들이 판을 친다고 하더라도, 점잖은 말이나 이성의 비판으로는 통하지 않는 세태라 하더라도… 인분을 퍼붓는 식의 투쟁은 합리적일 수가 없다. 만약, 만약에 말이다. 불신과 모멸의 감정 때문에 그러한 인분세례를 추호라도 통쾌한일이라고 생각하는 시민이 있다면, 정말 우리의 사회는 구제할 수 없는 악순환의 인분구덩이에서 헤어 나오질 못할 것이다. 김 의원만을 향해서 웃고 분노하고 할 일이 아니라, 우리 주변엔 더러운 자를 더러운 방법으로 제재하려는 자기모순의 그 원시감정에서 아직도 이성의 눈을 뜨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사카린」 밀수에 인분세례, 모두가 슬프고 슬픈 일들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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