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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벌거벗은 찰나의 기록

중앙일보

입력

사진을 찍는 건 순간을 기록하는 행위다. 그건 사각의 프레임 속에 시간을 가두는 일인 동시에 가둬진 하나의 순간을 영원히 남겨놓는 일이기도 하다. 그럼으로써 순간은 영원 속에서 자유로워진다. 남겨진 한 장의 사진 속에는 한 때 시간 속을 부유하던 공기와 냄새, 그리고 소리들까지도 새록새록 현상돼 있다.

따라서 사진이란 그 안에 담긴 풍경들의 발자취이자, 시간의 먼 피안에서 들려오는 영원의 소리에 화답하는, 우리가 가진 유일한 물증이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이제는 멀게만 느껴지는 과거와 영원히 오지 않을 듯한 미래 사이에서 모든 가식들을 벗어 던지게 만든다. 그 순간, 우리는 모든 자연물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벌거벗은 영혼의 기억들과 해후하게 된다.

동물들의 표정에서 읽는 어머니의 사랑
브레들리 트레버 그리브의『Dear Mom - 엄마, 고마워요』(신현림 옮김, 바다출판사)는 본디 한 뿌리에서 출발한 인간과 짐승의 공통된 정서를 사진이라는 거울을 통해 보여준다. 갖가지 동물들의 천차만별한 표정이 담긴 사진들이 짤막하면서도 재치 넘치는 문장과 함께 한 편의 소설처럼 이어진다. 그 다양한 동물들의 사진을 한 줄로 꿰어내는 내용은 다름 아닌 어머니의 사랑에 대한 감사의 답례다.

겁에 질린 다람쥐, 포효하는 호랑이, 어설프게 재주부리는 원숭이 등, 총 73장의 동물 사진들이 수록된 이 책은 공전의 판매고를 기록한 『The Blue Day Book - 누구에게나 우울한 날은 있다』(신현림 옮김, 바다출판사)에 이은 블루 데이 북 시리즈 2편으로 출간됐다.

호주 출신의 화가이자 만화가, 애니메이션 감독, 시나리오 작가이기도 한 저자가 발군의 감각으로 포착해낸 동물들의 적나라한 표정이 한 인간의 일생을 압축해놓은 듯한 문구들 속에서 자연스레 숨쉬고 있는데, 그것들은 인간이면 누구나 어릴 적부터 가지고 있던 표정들과 전혀 다를 바 없다.

페이지마다 울고 웃는 동물들을 바라보다 보면, 어느덧 풋풋한 미소를 머금게 된다. 그 미소는 자기자신의 어린 시절을 사진으로 확인할 때 느끼는 쑥스러움이나 애잔함에서 나온다. 저자는 이 쉽고 깔끔한 내용의 사진집을 통해 잊혀져버리기 쉬운 어머니의 사랑을 새삼 환기시키고 있다.

일상의 수면 아래 잠긴 행복의 표상들
"저 풍경을 보라... 주위를 둘러볼 때마다 늘 만족감이 밀려듭니다."

또 한 권의 사진첩 『어느날 문득 발견한 행복』(공경희 옮김, 뜨인돌)의 저자 애너 퀸들런은 책의 말미에서 이렇게 결론짓고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인간의 행복이란 물질적 풍요나 사회적 명성에 있지 않다는 자명한 사실을 따뜻하고도 소박한 사진들을 통해 다시금 주지시킨다.

저자는 우리가 몰두하는 삶의 목표 아래로 미끄러져 사라지는 순간들의 소중함을 얘기하면서, 진정한 행복이란 바로 그렇게 지나쳐 가는 무수한 순간들을 발견해내는 데에서 찾아진다고 말한다. 기실, 우리의 일상이란 얼마나 많은 풍경들을 시간의 긴 강물에 속절없이 흘려보내게 만드는가.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한 저자는 그 일상의 수면 아득한 곳에서 숨죽이고 있는 풍경들을 인생의 참된 의미로 새롭게 건져 올린다.

한 장의 사진 속에는 우리가 범상하게 지나쳐버린 무수한 시간의 비늘들이 숨겨져 있다. 그것들은 차디찬 일상의 수면 아래로 흐르는 생명력과 활기의 표상들이다. 시간의 물살에 쉬이 지워지기는 하지만, 어떤 영원의 명부 속에 그 싱싱함과 활력 그대로 숨쉬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영원의 낱알들은 '어느날 문득' 우리의 삶의 기저를 움직일 만큼 강한 파동으로 안일한 일상의 수면에 파문을 일으키곤 한다. 『Dear Mom - 엄마, 고마워요』와 『어느날 문득 발견한 행복』. 이 두 권의 책은 그 고요한 파문의 결 고운 무늬들이다. (강정 /리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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