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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바뀐 도시락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교원생활20년. 날마다 많은 어린이들에게 시달리다보면 으레 기다려지는 것이 점심시간이다. 오늘도 떠들어대는 아이들을 교실에 조용히 앉히고 도시락을 펴든순간 『어머나! 이를 어쩌나!』 그이의 도시락과 바뀌어 있지않은가. 노란달걀찜에 무김치가 잘어울려 나의 시야를 막는다.
○…도시락을 펴든채 멍하니 아침 일을 되살려 본다. 출근시간에 쫓기어 허둥지둥 집을 뛰쳐나왔던일을. 「맞벌이」 우리집에서 아침은 제일 분주하고 수선스럽다. 위로 중학교3학년부터 국민학교 1학년생까지 다섯아이나 되니 말이다. 「그런대로 자기일은 자기힘으로」를 가족들은 그대로 실천하여 각기 자기준비에 분주하다. 이런중에서 나의 일은 2중 3중으로 바쁘다. 식사준비는 물론 도시락만도 다섯개를 챙기고보면 으례 짠지쪽과 썰다남은 부스러기가 나의 도시락찬으로 남기마련이다. 그런데 오늘 이런 도시락찬으로 오늘은 짠지쪽만도 못하다.
○…저녁상에 둘러앉아 바꿔진 도시락얘기를 했더니 밥을먹던 아이들이 손뼉을 쳐가며 웃어댄다. 그이는 『당신도 간혹 영양보충을 해야지. 늘 식탁의 청소부장만하면 되겠소?』하고 웃는다. 그러자 큰 딸애가 『엄마, 내가가끔 바꿔치기해 놓을래』하고 거든다. 눈웃음을 띠며 흘겨보는 나의시선도 아랑곳 없이 아이들은 또한바탕 웃어댄다. <오순희·여·고원·서울동대문구보문동1가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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