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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간단 '라쿠라쿠폰' 메인화면 보니…깜짝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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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신화에서 크레타의 왕 ‘미노스’는 반우반인(半牛半人)의 괴물 ‘미노타우르스’를 가두기 위해 ‘명장(名匠)’이라는 뜻을 가진 ‘다이달로스’를 시켜 ‘라비린토스’라는 ‘미궁(迷宮)’을 만들었다. 명장의 작품답게 이 미궁은 한번 들어가면 내부가 너무나 복잡해서 도저히 출구를 찾을 수 없고, 결코 빠져나올 수 없다. 이렇게 벗어날 수 없는 복잡함은 마치 감옥처럼 세상에서 가장 가혹한 형벌 중의 하나다.

현대사회의 복잡성을 경고한 작가 존 L 캐스티는 그의 최근 저서 ?X이벤트?를 통해 ‘오늘날 우리는 강아지 사료를 사려고, 큰 의미도 없는 차이를 알아내기 위해 17가지 사료 성분을 비교하고 분석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고 말한다. 경쟁적으로 쏟아지는 비슷한 제품과 서비스들 속에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고 우왕좌왕할 때가 부지기수다. 스마트폰을 바꿀 때, 커피전문점의 주문대 앞에서, 또 연말정산을 위해 홈택스와 씨름할 때 우리는 당황과 혼란 때로는 ‘멘붕’ 상황을 겪기도 한다. 복잡은 그렇게 우리를 무능하고 나약한 존재로 만들어 버린다.

손안에 든 스마트폰으로 사진도 찍고 음악이나 영화를 즐기며 인터넷, 심지어 주식거래도 할 수 있는 요즘. 어찌 보면 참 편리한 세상이다. 하지만 이 같은 만능제품이 무조건 좋기만 할까? 사실 다양한 기능이 있는 만큼 그 복잡한 사용법은 사용자의 고통을 유발시키는 손안의 ‘미궁’과 다를 바 없다. 이 때문에 일본의 후지쓰는 NTT 도코모와 손잡고 꼭 필요한 기능만을 담은 스마트폰을 2008년에 출시했다.

바로 ‘라쿠라쿠폰’이다. ‘쉽게 쉽게(easy easy)’라는 뜻의 이 제품은 단 한 장의 메인 화면으로 구성돼 있고, e메일, 전화부, 일기예보 등 꼭 필요한 프로그램만 있다. 그리고 시니어들을 위해 심장박동 자동 체크, 만보기 내장 등 ‘헬스 다이어리’ 기능을 특화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실버폰으로 출시됐지만 그 단순함과 편리함 때문에 지금은 전 연령대의 사랑을 받고 있다고 한다.

요즘은 스마트폰처럼 여러 기능을 통합시킨 컨버전스(convergence) 제품이 대세지만, 동시에 복잡한 기기에 염증을 느낀 사람들이 통합된 기능을 해체시켜 하나의 기능에 최선을 다하는 디버전스(divergence) 제품에 매력을 느끼는 것도 사실이다. 미국의 아마존이 출시한 전자책 ‘킨들’은 대표적인 ‘디버전스’ 제품이다. 독서 기능에만 집중하고 있는 단순한 ‘킨들’이 인기를 끌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실제 책을 읽는 듯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전자잉크를 사용해 인쇄된 책을 보는 것만큼 눈에 무리를 주지 않고, 배터리가 오래가서 실제 책을 읽는 것처럼 장시간 읽어도 상관없다. 그야말로 책으로서의 기능에만 집중해 성공한 것이다.

독일의 할인매장 ‘알디(Aldi)’ 역시 현대인들의 이런 복잡함의 고통을 감지하고 취급하는 상품의 종류를 대폭 줄이는 전략을 취했다. 사람들에게 잘 팔리는 제품만 구비해 선택의 복잡성을 줄이고 단순함으로 승부한 것이다. 그 덕에 알디는 세계적인 초저가 할인 매장 체인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또 지난해 국내 히트 상품 중 하나인 ‘클럽 SK카드’의 경우는 사방으로 뻗은 선택의 가지들을 한데 모아서 성공한 케이스다. 통신, 주유, 마트, 학원, 대중교통, 하나은행 등으로 나뉘어 발급되던 할인카드를 하나로 통합한 것이다. 덕분에 고객들은 원하는 혜택을 위해 여러 장의 카드를 발급하고 사용해야 하는 복잡함에서 해방됐다.

얼마 전까지 야외에서 친구와 와인 한잔 하는 것은 번거롭고 복잡하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와인을 준비하는 것까지는 그렇다 쳐도, 와인 잔과 오프너도 챙겨야 한다. 또 와인이 남게 되면 버려야 하는 안타까움을 생각하면 고심 끝에 결국 와인 대신 다른 음료를 선택하게 된다. 하지만 영국의 ‘튤립 와인’은 이런 복잡한 고민을 단숨에 해결했다. 이 와인은 플라스틱 와인 잔에 담겨 은박지로 밀봉돼 있어 오프너와 잔을 따로 준비할 필요가 없다. 은박지만 싹 벗기면 언제 어디서든 바로 와인을 즐길 수 있는 이 간편함 덕분에 튤립 와인은 2011년 전년 대비 28배의 매출 성장을 이뤄냈다. 생활 속의 소소한 복잡함을 해결해 큰 성공을 거둔 것이다.

미노스 왕은 괴물을 가둔 미궁에 말 안 듣는 사람들을 집어넣었다. 그들은 미로 속을 헤매다가 결국 괴물의 먹이가 되고 말았다. 그곳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이가 ‘테세우스’다. 테세우스는 미노스의 딸 ‘아리아드네’가 준 실을 풀면서 미로로 들어갔고, 괴물을 죽인 후 실을 따라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 갈수록 복잡해지는 현대사회, 지금 우리 기업들은 ‘복잡성’이라는 괴물로부터 고객을 구하기 위해 ‘복잡’을 끊어낼 마법(魔法)의 칼, 아리아드네의 실과 같은 해결책을 끊임없이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

강신장 IGM(세계경영연구원) 원장

‘2불 4고 복 받자’는 불편·불안, 고통·고비용·고독·고령화, 복잡 등 고객의 아픔을 압축한 7개 단어로 만든 일종의 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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