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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우익의 역사 알리바이 ‘전범 무죄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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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라다비노드 팔의 전범 무죄론은 일본 우익의 역사 알리바이다. 침략과 수탈의 어두운 전쟁 그림자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우익은 그에게 열광한다. 그 대열에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있다. 아베의 총리직은 두 번째다. 첫 번째 총리 때(2007년 8월) 아베는 인도를 방문했다. 아베는 인도 국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기개 높은 용기를 보인 팔 판사는 많은 일본 사람으로부터 변함없는 존경을 받고 있다”-. 팔의 ‘기개 높은 용기’는 유일한 소수의견, 무죄 판결이다. 아베는 팔의 아들을 만나 감개무량해했다.

 그 발언에 대해 우리 외교부(당국자 논평)는 “재판 결과를 부인하는 것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는 언행에 깊은 우려와 유감을 표한다”고 했다. 팔은 인도 콜카타대학 법학 교수 겸 판사였다. 팔은 그 재판을 “정의의 법률적 외피를 쓰고 있으나 패전국 범죄만을 다룬 승자의 보복”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평화와 인도주의에 대한 죄는 국제법상 소급 입법이다. 죄형법정주의에 어긋난다”고 주장했다.

기시 노부스케(岸信介)는 A급 전범 용의자였다. 기시는 도조 내각의 상공대신이다. 기시는 무죄 방면되고 정계에 복귀한다. 1957년 총리가 된다. 66년 팔은 일본을 방문한다. 일왕의 훈장을 받는다. 기시는 “정의와 평화에 대한 팔 박사의 투철한 인식은 일본인들에게 비상한 감격을 부여했다”고 격찬했다. 그의 외손자가 아베다. 아베는 “A급 전범은 일본 국내법상 무죄”라고 주장한다. 기시의 삶과 역사관은 아베에게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2005년 6월 팔(사진)의 추모비가 야스쿠니(靖國)신사에 세워졌다

※국제군사재판(International Military Tribunal)=미국·영국·소련·프랑스 등 승전 4국은 1945년 8월 영국 런던에서 ‘전쟁범죄인의 소추·처벌에 관한 협정’을 마련했다. 통상적 전쟁 범죄, 평화를 침해한 범죄, 인도(人道)주의 위반 범죄를 처벌 대상으로 했다. 첫 개정은 ‘뉘른베르크 재판’(1차)이다. 도쿄의 ‘극동 재판’은 아시아판 뉘른베르크 재판으로 불렸다. 피고석에 핵심 A급 전범을 세웠다. 승전국이 재판관·검사를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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