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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죄와 벌

중앙일보

입력

고전이 읽히지 않는 시대. 가벼움과 정보 획득에만 눈이 먼 시대에 영화 '죄와 벌'은 제목만으로도 시대착오적이라는 느낌을 준다.

돈을 노려서가 아니라 버러지 같은 인간 하나 사라져봐야 아무 상관없다는 신념, 사회의 도덕률 정도는 초월해야 강자가 될 수 있다는 관념에 사로잡혀 전당포 노인을 살해한 대학생 라스콜리니코프.


티끌만큼의 죄의식도 없으리라는 예상과 달리 점점 조여오는 양심의 가책에 괴로워하다 결국 매춘부 소냐를 만나 신에 귀의하는 라스콜리니코프에게서 현대성을 읽어내려는 독자는 더 이상 없는 듯하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스스로 '죄와 벌'의 내용을 "환상적이고 암울한 사건, 현대적인 사건"이라고 불렀지만 말이다.

이 영화는 '레닌그라드 카우보이 미국에 가다''성냥공장 소녀' 등으로 알려진 핀란드의 괴짜 감독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데뷔작이다. 그의 나이 26세 때인 1983년 작품.

고깃덩이가 주렁주렁 걸려 있는 도축장. 도마 위를 평화롭게 기어가던 벌레가 무표정한 사내가 내리친 칼에 두 동강 나 버린다.

흔히 영화의 도입부는 그 영화가 앞으로 해 나갈 이야기를 숨기 듯 드러내는 함축적인 장치로 작용한다. 아닌게 아니라 곧 바로 장면이 바뀌면 주인공 라이카이넨이 어느 아파트를 찾아가 한마디 말도 없이 한 남자에게 방아쇠를 당긴다.

라이카이넨은 원작에서의 라스콜리니코프처럼 법학도이지만 지금은 도축장에서 일한다. 그가 혼카넨이라는 남자를 죽인 건, 그러나 원작처럼 어떤 관념 때문이 아니다. 혼카넨이 3년 전 라이카이넨의 애인을 자동차 사고로 죽이고도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났기 때문이다.

한편 살인 장면은 에바라는 여성에게 발각된다. 요리출장을 나왔다가 현장을 목격하지만 이후 수사과정에서 그를 모른 체 해준다.

카우리스마키 감독은 원작의 구도를 바꾸면서도 핵심 개념을 그대로 살리면서 간다. 라이카이넨은 살인 동기를 애인을 죽인데 대한 복수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가 역겨워서 죽였어. 벌레를 죽였을 뿐이야. 벌레를 죽여도 결국 벌레의 숫자는 줄지 않아."라고 외치는 것이다.

라이카이넨이 결과적으로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관객의 예측을 벗어난 선택을 하는 건, 신에 의한 구원을 믿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을 신뢰하기 때문이라는 역설로 처리한 게 인상적이다.

데뷔작이라곤 믿기지 않을 만큼 영상을 다루는 기법이 돋보인다. 카우리스마키는 사건을 세세하게 설명하면서 이야기를 풀어가는 대신 등장 인물의 표정과 사물을 뚝뚝 끊어지듯 보여주고, 장면 속의 구도도 엄격하다.

'레닌그라드 카우보이 미국을 가다'와 같은 블랙 유머풍의 영화를 만든 감독의 작품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그러나 유머란 결국 현실을 냉정하게 바라보는 데서 온다는 걸 안다면 차분한 카메라의 시선이 그다지 황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코미디든 범죄물이든 카우리스마키는 관객을 불편하게 함으로써 자신이 선 자리를 돌아보게 하는 묘한 힘을 지니고 있다. 29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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