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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리한 공포영화 '디 아더스'

중앙일보

입력

이제부터 동화를 들려드리겠습니다. 옛날 어느 마을에 누나와 남동생이 살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하얗고 아름다운 피부의 아이들이었어요. 그런데 누나와 남동생에겐 치명적인 콤플렉스가 하나 있어요. '햇빛'을 받으면 피부가 손상되고 병이 생기는 거지요.

아이 어머니는 한가지 꾀를 생각해냅니다. 바로 집안 모든 방에 두꺼운 커튼을 다는 거였어요! 낮시간에도 어머니는 커튼으로 햇빛을 가려 아이들을 보살핍니다. 뿐만 아니예요. 아이들 건강을 염려한 어머니는 (집엔 50개 정도의 방이 있습니다) 한 방에서 다른 방으로 옮길때마다 모조리 문을 잠궈놓았어요. 혹시나 실수로 아이들이 빛을 쬐지 않을까 걱정한거죠. 그런데 어둠과 침묵에 휩싸인 이 집에서, 기이한 일들이 벌어집니다......


'디 아더스'는 마치 한편의 동화같은 영화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영화는 간결한 몇가지 설정을 지닌다. 햇빛을 받으면 병이 생기는 아이들, 이 아이들을 돌보느라 그리고 전쟁터에서 전사한 남편의 기억으로 신경증에 사로잡힌 어머니, 그리고 저택을 찾아온 수상한 일꾼들. 1940년대 영국의 어느 낡은 저택을 무대로 하는 '디 아더스'는 공포영화의 익숙한 모티브를 지니고 있다. 유령이 나타나는 집, 이라는 것. 고전적인 모티브를 축으로 하면서 영화는 자유자재로 여느 스릴러나 공포영화의 문법을 빌어오고 인용하고 있다. 그 상상력과 독창성 하나는, 감탄스러울 지경이다.

그레이스는 빛에 노출되면 목숨이 위험해지는, 희귀한 병을 지닌 아이들과 산다. 저택엔 새로운 하인들이 찾아오고 그 뒤 이상한 일들이 생긴다. 빈방에서 갑자기 피아노 연주 소리가 들리고 딸 앤은 이상한 노파를 보았다고 말한다. 그레이스는 종교에 더욱 집착하지만 집에서 생기는 일들을 멈출수는 없다. 전쟁터에 나갔던 남편은 다시 귀향하지만 다음날 어디론가 사라지고, 그레이스는 집안의 모든 커튼이 일시에 제거되었음을 알게 된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걸까.

'디 아더스'는 섬세한 디테일로 승부하고 있다. 고전적인 장르영화의 틀을 지닌 이 영화는 극히 절제되면서 몽환적인 미장센을 보여주는 것이다. 영화에선 백일몽 같은 영상이 내내 지속되는데 여기에 희미한 조명과 효과음 등 사운드도 가세한다. 대부분의 조명은 시대적 배경을 고려해 인공조명이 아니라 실제 촛불이 쓰였으며 저택을 휘감은 안개는 모호한 분위기를 강조해준다. 영화에서 그레이스는 때로 환청을 듣거나 빈방에서 연주되는 피아노 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이상한 목소리를 접하게 되는데 이렇듯 '디 아더스'의 사운드와 음악은 영화를 공포스러운 기운으로 포박해놓는다.

영화감독은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 최근 톰 크루즈가 출연한 '바닐라 스카이'의 원작인 '오픈 유어 아이즈' 감독으로 알려진다. 아메나바르 감독은 공포에 대해 나름의 의견을 피력한바 있는데 "공포란 자신이 발휘한 상상력으로 인해 두려움을 느끼다가 어느 순간 정신을 치리면 예상치 못했던 어두운 모퉁이에 도착해있는 것"이라는 의견이다.

히치콕의 초기 영화를 연상시키듯 스릴러 영화의 고전적 품격을 지닌 '디 아더스'는 유령이 출몰하는 초자연적 공포, 어느 미망인의 노이로제 상태에 관한 심리공포의 세계를 적절하게 뒤섞는다. 해외 언론에선 영화를 '식스센스'와 비교하는 의견이 있곤 했는데, 개인적으로는 '식스 센스'보다 월등한 수준의 공포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식스 센스'가 아이디어 하나로 승부하는 영화였다면 '디 아더스'는 산자와 죽은자의 공존에 관한 감독의 철학이 스며있다고 표현해야 할까.

영화 히로인인 니콜 키드먼은 예의 창백한 얼굴과 신경증적인 연기를 보여준다. '디 아더스'에서 니콜 키드먼이 과시하는 연기력은 어느 출연작에 비해 뛰어나다. 참고로, 어느 해외언론에선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더 공포스럽다는 것을 보여주는, 영리한 영화"라고 평한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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