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조현오 전 청장, 징역10월 법정구속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6면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조현오 전 경찰청장이 20일 오전 1심 선고공판을 받기 위해 서울 중앙지방법원으로 들어서고 있다. 조 전 청장은 법정에서 징역 10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구속됐다. [뉴스1]

“피고인을 징역 10월에 처하고 법정구속한다.” 20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522호 법정. 형사 12단독 이성호 판사는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차명계좌를 언급해 사자(死者) 명예훼손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조현오(58) 전 경찰청장에게 실형을 선고하고 형 집행을 명령했다. 구속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 듯 말끔한 양복 정장 차림으로 법정에 나왔던 조 전 청장은 법정 경위와 함께 구속 피고인들이 기다리는 피고인 대기실로 향했다. 고개를 숙이지는 않았지만 무거운 표정이었다.

 이 판사는 이날 20여 분 동안 판결문을 읽어내려갔다. 대부분을 공인으로서 조 전 청장의 잘못을 지적하는 데 할애했다. 이 판사는 “피고인은 청와대 행정관 2명 명의의 시중은행 계좌가 노 전 대통령의 차명계좌라고 주장했으나 잔고가 수백만원에 불과했다”며 “거래내역 등에 비춰볼 때 노 전 대통령의 차명계좌로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피고인은 노 전 대통령의 차명계좌에 대해 처음 공개적으로 언급했다”며 “국민에게 ‘그래도 뭔가 있겠지’ 하는 의구심을 갖게 해 노 전 대통령을 지지 또는 비판하는 이들 사이의 국론을 분열시켰다”고 지적했다.

 이 판사는 “한 개인이 아니라 당시 서울경찰청장이었고 이후 경찰청장까지 지낸 피고인이 공식적인 자리에서 강의한 내용은 사회적 파장이 클 수밖에 없다”며 “피고인의 발언은 누구도 근거 없는 허위사실이라고 쉽게 단정할 수 없을 만큼 위력적인 정보”라고 판단했다. 또 “차명계좌가 진실이라고 믿는다면 개인과 조직을 감쌀 것이 아니라 공익을 위해서라도 실체를 밝히는 게 도리인데 근거를 제시하지 않아 사건을 미궁처럼 보이도록 만들었다”며 “단순히 허위사실을 공표한 것보다 죄가 더 무겁다”고 말했다.

 조 전 청장은 서울지방경찰청장이던 2010년 3월 전경을 대상으로 한 특강에서 “거액의 차명계좌가 발견되자 노 전 대통령이 부엉이바위에서 뛰어내렸다. 권양숙 여사가 민주당에 이야기해 특검을 못하게 막았다”고 말해 논란을 빚었다. 노 전 대통령의 사위인 곽상언(42) 변호사가 강의 내용과 관련해 조 전 청장을 사자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자 “검찰에서 밝히겠다”며 물러서지 않았다. 검찰에 불구속 기소된 후에도 공판에서 “믿을 만한 사람으로부터 노 전 대통령의 차명계좌에 대해 들었다”고 주장했다. 다만 정보의 출처가 누군지에 대해선 “절대 밝힐 수 없다”고 했다.

  이에 대해 서울 소재 경찰서의 한 경찰관은 “내부 교육에서 나온 비공개 발언인데 실형을 선고하는 것은 지나치다”며 “그렇다면 사적 모임이나 내부 회의에서도 항상 확실한 증거를 갖춘 이야기만 해야 하느냐”고 말했다. 조 전 청장은 이날 즉각 항소했다.

 이 판사는 지난해 8월 성추행 사건으로 실형이 확정된 고려대 의대생 배모(26)씨의 모친 서모(52)씨에게 “피해 여학생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징역 1년을 선고하면서 법정구속하기도 했다.

김기환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