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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민중당>(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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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민중당의 총선거준비는 출발점에 있다. 박순천·유진산씨가 정점에 있기는 하나 거당적지지를 받는 집권경주의 기수는 아니다. 지난번 전당대회때『박대표가 후퇴하면 다른 대안이 없잖습니까』(김대중씨말)라는 재추대론이나『유진산씨만한 정치력을 가진 분이 우리 당에 있습니까』(고흥문씨 말)라고 말하면서도 유씨를 당대표로 밀지 못한 민정계의 태도가 이것을 반증하고 있다.
박순천체제는 창당이래 줄곧 격랑에 흔들려왔다. 의원직 사퇴를 오도된 지도 노선으로 단정하고 원내로 돌아가면서 정책야당을 지향하겠다고 공약했으나 새 지표는 뚜렷이 부각되지 못했다. 새로 짜여진 박·유체제의 당권확립과 집권경주의 기수를 찾아내는 대통령후보지명대회는 가장 곤란한 미결의장으로 남아 있다.
박·유체제는 민주·민정양파가 모두 불만스러우면서 양파의 균형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여건에 밀려 짜여진 것이다.
전당대회는 지도층개편을 요구하는 박병권씨등 세칭 일부 재야세력의 압력을 받았다. 허정씨 지지파인 김세영·태완선씨등 세칭 을지노파는 박순천씨를 당고문으로 후퇴시키고 허정씨를 대표로 선출하는 구상을 추진했다. 유진산씨 중심의 민정계도 유씨를 부당수선에 올리는 작업을 펴면서 박씨 후퇴를 찬성하는 쪽으로 기울였다.
그러나 이상철·김대중씨등 민주계주류는 박씨의 당대표 재선출을 전제로 하지 않는 한 어떤 타협도 할 수 없다는 완강한 자세로 대립했다. 이 세 갈래「그룹」은 자파만의 의견통일마저 갖지 못하는 혼선 때문에 과반수세력을 형성하는 연합도 실현치 못하고 대회당일까지 전략을 저울질했다. 이리하여 대회장에서 민정계가 박대표 후퇴론을 철회하고 민주계가 유씨 진출에 협조하는 공존의 길이 선택된 것이다.
이렇듯 엉성하게 결합된 박·유체제는 반작용에 기민하게 대체해 가지 못했다. 민중당 합류를 성명했던 재야측은 지도층개편이 실현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합류 결심을 철회, 뒤로 물러났다. 허정씨 지지파는 합류실패를 이류로 박대표에게 대표직을 내놓도록 압력을 가했다.
민주계 안의 세칭 홍익균 부대도 박순천씨를 감싸고 있는 이상철·김대중「라인」에 반발, 허씨파의 반격작전에 동조했다. 민정계 일부도 이들 반대 세력에 편들었다.
민주계는 당대표를 차지했으나 자파를 더욱 세분화했고 지도층의 당운영은 암초에 걸렸다. 전당대회후의 첫 중앙상위에서 박대표가 내세운 최영근씨는 상위의장 선거에서, 반주류인 이병하씨에게 3차결선 투표 끝에 패배했고 김대중씨는 정책위의장 경쟁에서 반주류의 홍영기씨 2차 투표까지 치러 간신히 올라섰다. 시련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두 번째 상위는 운영회의가 지명한 5개 실무국장 인준을「비토」했다.
두 차례 실패를 겪은 뒤 각 국장등 당무위원 재지명을 논의하기 위해 유진산·고흥문·김대중씨가 국제「호텔」에서 만났을 때다.
『나는 민정계가 부럽습니다. 진산 선생도 직접 설득에 나서고 김영삼씨는 원내를, 고흥문씨는 원외를 맡아 민정계를 단합시키고 있잖습니까. 민주계사람들은 진산당이 되어 간다고 불평합니다. 그러면서도 민주계 단합은 생각지도 않습니다. 우리 쪽은 불만이 팽창해도 박대표는 예전부터 관여하지 않는 분이고 이상철씨는 병원에 누워만 있고 장통숙씨는 도리어 못마땅해 하고 있고…. 결국 나 혼자서 이리 뛰고 저리 뛰다 보면 또 독주하고 있다는 더 큰 반발이 생겨나고…』김대중씨는 민주계의 갈등과 고충을 털어 놓았다. 박·유체제의 악수는 이날의 국제「호텔」의 회합에서 비로소 이루어졌다. 양파는『안배의 정신을 존중하되 파벌의 경쟁 헌식을 극복하고 당내에 충만해 있는 불만을 해소 하고 대립을 중화하는 방향을 당운영원칙으로하여 사전, 합의사항의 관철을 위해 보조를 같이 한다』는 것이 국제「호텔」에서의 합의 내용이다.
주류양파의 이 합의는 당무위원재지명의 확인을 위한 상위가 열렸을 때 첫 노력을 과시했다.
부결되었던 첫 지명에서 별로 달라진 것이 없는 실무국장 재지명에 대한 인준투표는 가1백26·부65로 3분의 2선에 다다랐다. 이 때문에 반주류는「책동」을 단념, 정책위 분과위원장 인준에 있어서는 투표 없이 만장일치로 통과시키는데 동의했다. 박·유체제는 국제「호텔」합의가 깨어지지 않는 한 당의 안정세력으로 체제정비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반주류의 복병은 대통령 후보 지명대회로 가는 길목을 지키고 있다.
반주류는 실패로 돌아간 재야세력 단합의 과제를 지명대회전에 다시 성취시킬 것을 요구하고 그렇지 못할 때는 자구적행위를 단행하겠다는 압력까지 가하고 있다. 또 다른 일각에서는 10일 지명대회에서 21인운영회의를 3인 또는 5인의 지명체제로 축소시키는 당헌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따라서 박·유체제의 안정세력 구축은 문제해결의 첫 요건을 갖춘 것 이상의 의미는 갖지 못하며 차라리 강파른 비탈길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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