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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개성만점인 '세컨하우스', 침실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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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강원도 홍천군 내촌하우스 3번지 집은 통창으로 돼 있다. 주방에서 요리하며 바깥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창가엔 주인장이 친구들과 나눠 마신 와인병이 쌓여 있다. 집주인들에겐 집이 놀이터이자 쉼터다. 그들은 “내촌에서 위로를 받는다”고 했다. [사진 남궁선 건축사진작가]

건축가와 목수가 함께 집을 짓는다. 이상한 조합이다. 이윤희(44) 이화여대 건축학과 교수와 이정섭(42) 한옥 목수의 이야기다. 작업방식이 완전히 다른 그들이다.

 그런데 둘의 의기투합에 관심을 보인 건축주들이 나타났다. 사업가·교수·의사 등으로 구성된 5명의 건축주는 강원도 홍천군 내촌면에 세컨하우스 다섯 채를 짓길 원했다. 세컨하우스는 일종의 별장으로, 시골에 적은 비용으로 짓는 집이다. 이들은 3305.8㎡(약 1000평)의 땅을 5개 필지로 나눠 샀다. 그리고 2010년 말 ‘내촌 하우스 883+816’이 완공됐다.

 나무집 다섯 채는 백우산 기슭을 따라 하나씩 층층이 자리 잡았다. 산 능선의 끝을 잘라 먹지 않고, 흐름을 이어가기 위해서다. 집 모양은 비슷하다. 모두 직사각형에 ‘ㅅ’자 모양 박공 지붕을 얹었다. 산기슭 맨 위부터 1~3번지 집(건축면적 99.2㎡)은 단층이고, 4·5번지(72.7㎡)는 2층 집이다.

 그런데 가까이서 보면 콘크리트·벽돌·나무 등 외벽 소재가 모두 다르다. 이 교수는 “전체적인 통일성을 주되, 소재를 달리 써 포인트를 주었다”고 말했다.

집 앞에 마당을 두길 원했던 내촌 2번지 집.

 ◆군더더기 없는 ‘민낯집’=건축가와 목수, 그리고 건축주는 내촌의 풍경만큼 겉치레 없는 나무 집을 짓기로 합의했다. 주재료는 소나무·참나무·호두나무·물푸레나무·삼나무 등이다. 일본 전통 목조주택을 연상시키는 ‘ㅅ’자 지붕은 강원도의 눈을 자연스럽게 흘러내리기 위한 디자인이다.

 눈 온 뒤엔 지붕 끝마다 수십 개의 고드름이 매달린다. 집 내부의 대들보와 서까래, 기둥은 고스란히 노출돼 있다.

 이 교수는 “집안을 수평·수직으로 가르는 나무들은 그 자체가 꼭 필요한 구조물로 감추지도 않고 더하지도 않았다. ‘민낯집’에다 메이크업베이스 바른 정도로 마루만 설치했다”고 했다.

 설계는 건축가와 목수가 함께했다. 공사는 수작업으로 했다. 실내등도 두 사람이 직접 만들었다. 목수는 서울 신사동의 카페 ‘무이무이’의 실내 가구를 디자인하기도 했다. 그가 만들어 넣은 신발장은 ‘작품’이 됐다. 집주인이 방에 들여놓고 책상으로 쓸 정도다.

 이 교수는 “설계자와 시공자가 처음부터 작업을 같이해 집이 공사 과정에서 ‘부모 잃은 고아’처럼 되지 않고, 애초의 계획대로 일관성 있게 지어질 수 있었다”고 했다.

 서울에 집을 둔 건축주의 ‘두 번째 집’이다 보니 거실·주방 같은 공용공간은 크게 만들었다. 방은 작다 못해 어느 한 쪽에 숨겨져 있다. 요리를 좋아하는 3번지 집주인은 주방을 크게 할 것을 요구했다. 그래서 이 집의 명물은 10여 명이 앉을 수 있는 아일랜드 탁자다. 집에 들어서면 주방을 거쳐 거실로 가야 한다.

일본식 목조주택을 연상시키는 4번지는 2층 현관을 통해 1층 거실·침실로 내려가는 구조다.

 ◆시골 어르신들과 교류도=4·5번지 집주인이자, 경기 구리에서 치과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조문건(53) 원장의 왼쪽 뺨엔 상처가 나있다. 겨우내 내촌에서 장작을 패다 얻은 훈장이다. 그는 지난해 가을쯤 최초의 건축주가 사정상 팔려고 내놓은 내촌하우스 4번지를 샀고, 이윽고 5번지까지 샀다. 경제적으로 부담이 컸지만, 갤러리를 만들고 싶다는 평소의 꿈을 실현하고 싶었다.

 서울에서 한 시간 반 거리인 덕에 일주일에 나흘을 내촌에서 보낸다. 서울집보다 오래 머무는 집이 됐다. 가을·겨울을 보내는 동안 그는 집 주위에 무성한 잡목을 쳐내는 데 몰두했다. 집을 가꾸느라 몸을 계속 움직인 만큼 이야깃거리도 많다.

 “집 옆의 냇가가 예뻐 그대로 두면서 잡목만 살짝 쳐냈더니 바위가 드러났어요. 숨은 보물을 발견한 것만 같아요. 날 풀리면 냇가를 따라 내촌 올레길도 만들 거에요.”

 어르신들 많은 내촌에서 조 원장은 졸지에 젊은이가 됐다. 그는 “홀로 사는 어르신이 많은데 산책하다 만나면 ‘아이고 젊은 사람 왔다’며 반주를 권하셔서 낮부터 얼굴이 벌게 진 적이 한두 번 아니다”며 웃었다. 집에서 만든 반찬을 갖다 드리면 현지에서 수확한 나물이 답례로 돌아왔다.

 조 원장과 해질 무렵까지 내촌 이야기를 한참 하다 일어서는 길. 그는 꾸덕꾸덕 말린 호박 두 봉지와, 내촌에서 짰다는 들기름 한 병을 쿡 찔러줬다. 마치 내촌의 어르신들처럼 “무쳐먹으면 맛있다”는 말과 함께.

홍천=한은화 기자

◆건축가 이윤희=이화여대 건축학과 부교수. 이윤희 건축사무소 소장. 미국 켄사스 주립대(건축학)와 예일대 건축대학원을 졸업하고 뉴욕 폴 베넷 아키텍츠에서 근무했다.

◆목수 이정섭=서울대 서양화과를 나와 목수가 됐다. 강원도 홍천에 목공소를 열고 가구를 만들고 집도 짓는다. 조선 목가구의 전통을 잇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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