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독일 좌파 작가 고 슈테판 하임

중앙일보

입력

전후 독일 문단의 대표적 좌파 작가 중 한명이었던 슈테판 하임이 지난 16일 세상을 떠났다. 88세.

하임은 지난 주 예루살렘에서 열린 하인리히 하이네 회의를 마치고 부인과 함께 사해 연안 호텔에서 휴식을 취하다 이날 낮 심장마비로 숨졌다.

군산대 이혜자(李惠子.45.독문학) 교수는 "그는 평생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다 어느 체제에도 정착하지 못한 채 이상적 사회주의자로 생을 마감했다"며 애도했다.

스스로 '비판적 마르크스주의자'로 불렀던 고인은 영원한 반체제 작가였다. 켐니츠에서 유대인 상인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고교 시절인 31년 군국주의에 반대하는 시를 써 퇴학당한 뒤 훔볼트대에 진학, 철학.독문학.신문학을 전공했다.

35년 나치의 박해로 부친이 자살하고 가족들이 유대인 수용소에서 학살되자 미국에 망명,시카고대에서 하이네 연구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37년부더 2년간 뉴욕의 반(反) 파쇼 주간지 '도이체스 폴크스에효'의 편집국장을 지냈고 38년 독미작가협회에 가입했다.

42년 최초의 장편소설 『인질』(독어명 『글라제나프 사건』, 1958) 을 발표, 작가로 인정받았다. 43년 미군에 입대한 그는 44년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참전했다.45년 미군장교로 귀국, 뮌헨에서 '노이에 차이트'란 신문을 창간했다. 48년 미국에서 전쟁소설 『십자군 전사』(독어명 『오늘의 십자군 전사』, 1950) 를 발표했다.

한국전에 항의, 미국 정부에 훈장과 함께 국적을 반납한 그는 52년 다시 동베를린에 정착했다.

그러나 동독에서도 사회주의 정권과 관계가 나빴다. 53년 신문에 비판적 칼럼을 기고하면서부터 발터 울브리히트.에리히 호네커로 이어지는 공산정권과 내내 갈등을 빚었다.

특히 65년에는 53년 6월 17일 발생한 동독 노동자.학생들의 반공시위를 묘사한 『6월의 5일』을 발표, 호네커의 미움을 샀다. 이 작품은 74년 서독에서 발간됐다. 79년 동독 당국의 검열을 거부한 채 서독에서 『콜린』을 발표, 동독 작가동맹에서 추방됐다. 그러나 동독 정권은 가장 유명한 반체제 작가였던 그에게 어떤 제재도 가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가 서독에서 '자유의 전사'로 환영만 받은 것도 아니다. 69년 서독에서 출판한 『라살』때문에 고발돼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94년 총선에서 동독 공산당 후신인 민사당 후보로 출마, 최고령으로 당선된 그가 관례에 따라 개원연설을 하자 당시 집권당이던 기민당 의원들은 박수를 거부했다. 그가 동독 비밀경찰 슈타지의 첩자라고 의심했기 때문이다. 현실정치에 환멸을 느낀 그는 이듬해 의원직을 사퇴했다.

고인은 80이 넘은 나이에 『라덱』(95년) 과 자전적 소설 『파르크프리더』(98년) 를 내는 등 노익장을 과시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