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짭짤하고 고소한 30년의 인생이야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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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만으로 서른 살인 소설가 최재경은 점점 말수가 줄고 눈물이 말라간다고 한다. 처음 소설을 쓰던 당시의 우울하고 어두운 이야기들이 이젠 젊음의 치기로 여겨진단다.

그런 그녀가 암울하고 습한 이십 대의 터널을 막 통과해 나오면서 첫 번째 작품집을 발간했다. 『숨쉬는 새우깡』(민음사). 이 유별나고 다소 코믹한 느낌의 제목은 그러나 작가 최재경의 30년 인생이 고스란히 배어있는, 매우 쓸쓸하면서도 암시적인 유머다.

새우깡의 역사, 우리 세대의 역사
“요즘 우리 세대에 대한 소설들이 많지만, 대개가 운동권 후일담을 비슷하게 반복하고 있더라구요. 하지만 그런 엘리트들은 우리 사회에서 소수에 불과해요. 전 보다 보편적인 대중들의 일상을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얘기로 접근해 보고 싶었어요. 어정쩡한 자본주의의 세례를 받은 우리 세대의 이야기를 보다 보편적인 방식으로 전해주고 싶었던 거죠.”

‘새우깡’은 작가 최재경과 나이가 같은, 우리나라의 최장수 과자다. 그녀와 비슷한 시기에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들은 누구 할 것 없이 새우깡과 관련된 추억 한 두 개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최재경의 소설에는 그렇듯 새우깡과 함께 나고 자란 세대들의 소소한 일상이, 주로 비틀린 가족사를 배경으로 전개된다.

표제작은 과거 새우깡을 개발하다가 죽은 한 제과회사 연구원의 혼이 현재를 사는 한 30대 여성의 몸 속에 깃들여 그녀의 몸으로 지금 세대를 관찰한다는, 다소 황당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주인공이 살아있을 당시, 즉 새우깡이 처음 탄생하던 때의 사회상과 현대의 모습들이 대비되면서 펼쳐지는 다채로운 이야기들은, 처음의 황당함을 신선함으로 변화시킬 만큼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러면서 종국에는 모종의 가족사적 비극이 이야기의 중심에 홀연히 아로새겨진다. 그리고 그런 ‘가족의 비극’은 비단 이 작품만이 아니다. 어머니이자 누나인 여자와 정을 통한 후 그녀를 살해하는 악사(「발의 꿈」), 시댁 식구와의 갈등 끝에 남편에게 살해당하고 마는 주부(「사육제의 하루」), 첩의 자식이라는 피해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여류화가(「살아있는 죽은 여인」) 등, 최재경의 소설들엔 소위, ‘문제 없는 가정에서 원만하게 자란 사람’들이 잘 등장하지 않는다. 이 도저한 가족사적 비극들의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제가 실제로 그렇게 비틀린 가정에서 자란 건 아니에요. 하지만 제 주위에 그런 인물들이 많이 있었어요. 그렇다고 그들의 얘기를 액면 그대로 소설화한 건 아닙니다. 단지, 제가 전하고자 하는 얘기들의 기초를 제공해 줄뿐이었지요.”

소설이라는 형식이 아니더라도 소설은 가능해요
그러나, 최재경은 자신이 그려내는 슬픔이나 비극들에 결코 함몰되지 않는다. 이미 말했듯, 그녀는 어느덧 슬픔 속에서도 슬픔의 외관을 관찰하고, 비극의 한 중심에서 돌연, 비극과 희극의 경계가 존재하지 않는 보다 넓은 삶의 지평으로 뛰어오르는 방법을 터득한 것이다. 그런 여유와 탄력이 그녀의 소설에 속도감을 부여한다.

마치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있는 듯한 이런 속도감은 간결하고 정확하면서도 삶을 객관적인 거리에서 바라보는 여유로운 유머가 깃든, 그녀 특유의 문장력에서부터 발현된다. 마치, 질척한 감정의 골을 오랫동안 들여다 볼 시간이 있다면, 보다 활기차고 다양한 세계의 모습들을 보여주겠다고 강변하는 듯하다.

실제로 그녀는 영화나 드라마 같은, 보다 시각적이고 전달력이 강한 매체들에 친숙하다. 그건 그녀 세대 대부분의 작가들이 공유하는 감각인 동시에, 보다 대중에 가깝고 보편적인 소설을 쓰겠다는 최재경 고유의 소설관과도 직결되는 문제다.

“전 제 소설을 많은 사람들이 읽게 하고 싶어요. 어떤 경우에는 소설 한 권 보다 두 시간짜리 다큐멘터리가 더 유익할 때가 있잖아요? 전 굳이 소설이라는 형식이 아니더라도 소설이 가능하다고 봐요. 그리고 소설이 줄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들을 소설이 아닌 형식을 통해 제공할 수 있다면, 소설을 보다 더 큰 관점에서 파악하는 열린 시각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그녀의 이력을 살펴보면, 이런 호언이 단순한 희망사항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최재경은 한때, 인기그룹 공일오비의 히트곡 ‘4210301’과 ‘사람들은 말하지’ 등의 가사를 쓰기도 했고, ‘제1회 아이찜 시나리오 창작기금’을 받아 영화현장에도 뛰어든 적이 있는, 다재다능한 재원이다. 더군다나 그녀는 1996년에 이미 장편소설 『반복』(살림)을 출간한 경험도 있다.

이런 활발한 활동은 문화 전반에 걸친 다양한 관심과 심지 곧은 의지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최재경은 앞으로도 기회가 닿는다면, 문화 각방면에서 자신이 가진 모든 역량들을 발휘하고 싶다고 말한다. 실제로 그녀는 요즘 직장생활을 하고있는 틈틈이 6미리 카메라를 들고 디지털 영화를 촬영해볼 계획을 품고 있다. 정말, 이미 번진 불 위에 겁 없이 기름을 퍼붓는, 맹렬하고 당찬 작가가 아닐 수 없다.

소설은 인간을 이해하는 도구
그런 그녀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녀에게 있어 소설쓰기란 가장 외롭고 치열해질 수밖에 없는, 그녀만의 삶의 형식이 된다. 최재경은 소설의 힘에 끌려 다니는 기간이 너무 외롭고 힘들다고 말한다. 소설이 자신의 인생을 파괴하는 측면이 있는 것 같다고. 그러나 그녀의 소설쓰기는, 그런 유수한 고통과 회한 속에서도 당분간 멈추지 않을 듯 보인다. 무엇보다도 그녀에게 소설이란 인간을 이해하는 가장 근원적인 도구인 까닭이다.

최재경은 자신의 소설이 읽는 이들의 심리적인 내상을 치유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피력한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상상력을 갈고 닦아 감성을 강화하는 훈련이 필요할 것이다. 그녀는 그런 지난한 과정을 통해 보다 밀착된 타인과의 접점을 찾고 싶다고 말한다.

지금 계획 중인 소설이 무엇이냐는 집요한 질문에 센스 만점의 능청으로 눙을 치는 그녀의 모습에서 어느덧 인생의 정점에 올라 삶의 질곡들을 여유롭게 굽어 보는 대가의 초년상이 오버랩되는 것도 같다. 그러나 이 말은 결코 그녀가 겉늙었다는 소리가 아니다. 막 삶의 튼실한 뿌리 하나를 붙잡기 시작한 그녀는 현재, 쌩쌩한 미혼의 열혈처녀다. (강정/리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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