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괴의 자주 노선 시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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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북괴의 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12일자 사설에서 「자주성을 옹호하자」는 제목 하에 「모스크바」나 북평으로부터의 독립 선언이라고 볼만한 주장을 내세웠다. 이 사설은 『공산주의자는 항상 자신이 생각하고 자주적으로 행동하고 자기의 독자성을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 공산주의자는 남이 부는 피리 소리에 장단을 맞추어 춤을 추어서는 안 된다. 자기의 두뇌를 사용치 않는다면 독립성을 잃고 만다』는 요지의 원칙론적 주장을 내세웠다. 그리고 나서 이 사설은 대국에의 추종주의를 거부하고 북괴는 구 「인텔리」층을 숙청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하고 최근 일본 공산당이 외국 공산당으로부터의 간섭을 반대한데 대해 찬의를 표한다고 하였다.
북괴 당 기관지의 이러한 주장은 북괴가 공산권 내에서 앞으로 취하게될 새로운 정치적 자세를 시사하는 것으로서 주목할만한 것이다. 중공·소련의 대립·분쟁이 격화되어 중공이 미국과 마찬가지로 「소련 수정주의자」를 주 적의 하나로 간주하고 있는 차제에 양자 대립의 틈바구니에 끼여 심히 고민하고 있던 북괴가 중공·소 대립 분쟁에 대해서 중립을 선언하였다는 것은 약소한 공산당의 자기보존 본능의 발로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60년 중공·소련 분쟁이 싹트기 시작한 이래 북괴가 양자에 대해서 취한 자세의 역사적 경위를 보면 상기 사설은 중립 선언이라기보다 북괴가 북평 노선에서 결정적으로 이탈하고 「모스크바」 노선에 접근하기 위한 정치적 포석이라고 봄이 타당할 것이다.
왜냐하면 63년 말까지만 하더라도 북괴는 북평 노선에 편중하는 정책을 써오다가 작년 2월 소련 수상 「코시긴」의 평양 방문을 계기로 소련에도 친근한 미소를 보내 양토를 동시에 쫓아가는 「제스처」를 취해 왔었는데 금차 선언은 그 내용으로 보아 「모스크바」노선보다 북평 노선을 더 비난한 흔적이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북괴가 북평 노선에서 벗어나고 「모스크바」 노선에의 접근을 시사하게된 배후의 이유는 무엇일까. 혹자는 중공의 남침 강요에 반발을 일으켰기 때문이라 하고, 또 혹자는 북괴 공업 발전은 중공보다 소련에 의존하는 도가 높은데다가, 중공이 국제공산주의운동에 있어서 결정적으로 소수파의 지위에 몰락하고있는데 북평 노선을 그냥 추종하다가는 북괴가 큰 손실을 입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진정한 이유는 지금까지 나타난 징조만 가지고서는 파악키 어렵지만 어쨌든 간에 북괴가 일본 공산당과 같이 독자 노선 추구를 선언했다는 것은 극동의 공산주의 운동에 있어서 상당히 큰 변화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한다.
북괴는 대내 통치 면에 있어서 「스탈린」주의의 잔재를 뿌리깊이 온존하고 또 대외 정책면에 있어서 강경한 고자세를 취해온 점, 모택동 통치 체제와 흡사한 점이 많았다. 이런 북괴가 북평 노선에서 이탈하고 「모스크바」 노선에 접근하는 것이 과연 「스탈린」주의의 청산이나 소련의 평화 공존 노선에의 동조를 의미하게 될 것인가. 김일성 독재의 사적 과정으로 보면 북괴가 김일성 개인에 대한 일인 숭배를 지양하고 집단 지도제로 이행을 한다든지, 북괴 사회의 자유화·민주화를 촉구한다든지, 소비 생활 수준을 높이는 방향으로 나간다든지, 대외 적대 정책을 완화한다든지 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한 것 같다.
이런 의미에서 최소한 김일성 독재 체제가 허물어지기 전에는 북괴의 「루마니아」화를 바란다는 것은 한낱 환상적인 기대에 가깝다. 상기 사설은 북괴 내의 「종파 분자」 숙청을 시사하였는데 북괴의 노선 변경이 어떤 양상의 권력 투쟁 전개를 가져올 것인지 북한 사태를 예리하게 주시할 필요가 있다.
지금으로서도 한가지 명백한 것은 북괴의 자주 선언이 결코 그들의 공산통일노선의 포기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이니 우리 국민은 북괴에 대한 경각심을 계속 견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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