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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의 꽃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월초에 벌어졌던 해병과 공군 장교들의 편싸움이 빚어낸 먹구름에 가려서, 그 진가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해병의 꽃이 있다. 「베트콩」의 「아지트」 속으로부터 날아온 수류탄을 덮쳐 뒤따르던 부하들을 구하고, 스스로는 월남 땅에 꽃 져간 해병 이인호 대위.
이 대위가 산화한 정경은 고 강재구 소령의 그것과 신기하게도 같다. 다만 강 소령의 죽음이 훈련중의 일이었던데 비해, 이 대위는 적과의 실전에서 전사했다는 것이 다르다. 이 대위의 죽음의 장렬함이 오히려 더하고, 우리에게 더욱 큰 감동을 주는 이유가 그것이다. 미국 같으면 이 대위의 전사는 「메달·오브·어너」의 서훈을 받고 군사에 길이 기록될 것이다.
군인이 싸움터에서 용감하게 싸운다는 것은 그의 의무이다.
그러나 「의무의 요구를 넘어 선」 이 용맹을 발휘해서 선전하고, 흔히는 자신의 목숨을 잃는 사람들이 있다. 「메달·오브·어너」는 바로 그러한 용사들에게 주는 것이다. 우리도 「메달·오브·어너」급의 훈장 제도를 마련해야하지 않을까.
이 대위는 강 소령과 같이 사관학교의 정규 과정을 밟은 직업 군인이었다. 국군의 역사와 정규 사관 교육의 역사가 다같이 짧은 한국에서 그들과 같은 뛰어난 군인이 잇따라 나온다는 것은 사관 교육의 큰 성공을 의미하는 것이다. 사관 학교 4년 과정이 순전히 직업적인 군사 교육만으로 시종하지 않고 상당히 광범위한 인문 교양을 아울러 과해온 것이 주효한 것일까. 군인이기에 앞서 교양 있고 지혜로운 시민이 아니고선 군인으로서의 가장 초보적인 구실조차 해낼 수 없는 것이 근대전이다. 총 잘 쏘고 공수에 능해서 만은 유능한 사관이 될 수 없다. 이 대위가 보여준 높은 수준의 인격의 소지자이어서 비로소 지휘관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군율이 아무리 엄하고 사관 교육이 아무리 완벽한들, 모든 장교에게 이 대위가 보여준 것과 같은 고귀한 용맹을 기대하거나, 또 가르쳐서 될 일은 아니다. 의무와 함께 교육의 한계를 크게 넘어선 용맹을 과시한 이 대위의 죽음이 한없이 귀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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